[‘盧-金 대화록’ 증발] 국정원 다시 ‘정쟁속으로’

입력 2013-07-23 18:16

정치권이 국가기록원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이 없다고 최종 결론지으면서 대화록 사본과 녹음 파일을 보유 중인 국가정보원의 차기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정원이 녹음 파일을 공개할 경우 다시 정쟁의 한복판에 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야 정치권은 남재준 국정원장을 비롯해 김만복·원세훈 전 원장의 언행을 종합할 때 국정원이 대화록 실종 사태의 전후 맥락을 잘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민주당은 남 원장이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없다는 것도 사전에 파악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23일 라디오에 출연해 “남 원장이 문제의 핵심 키를 가지고 있다”며 “남 원장이 국정원에 있는 것이 ‘원본’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 모든 것을 남 원장은 알았던 것”이라고 의구심을 표출했다. 민주당은 원 전 원장 재임 시절 대화록 사본이 여권 핵심 관계자들에게 건네졌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의 협조를 받아 대화록을 작성했던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이 올 초 검찰에서 대화록에 대해 증언한 내용도 청와대 등 여권이 대화록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국정원이 지난달 말 국회와 협의 없이 대화록 사본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녹음 파일 공개에 적극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시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외교적 비밀문서를 공개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국정원이 여당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한 불쾌감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새누리당에서는 녹음 파일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우택 최고위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쟁을 끝내기 위해 녹음 파일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 차원의 공식 입장은 정해진 바 없다. 당 일각에서는 국가기록원 대화록 원본 실종 사태의 경우 검찰에 힘을 실어주면서 국정원은 좀더 지켜보자는 시각도 나온다. 견제심리가 발동한 것이다. 여권의 전폭적 지원 없이 국정원이 다시 움직이기는 이래저래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