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金 대화록’ 증발] 사면초가 몰린 문재인… 민주당 내부 책임론 비등

입력 2013-07-24 01:59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으로 그동안 원본 열람을 강하게 주장해온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문 의원은 상황이 급박해지자 23일 성명을 내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끝내자”고 밝혔지만, 오히려 그동안 논란을 키워온 당사자가 마치 제3자적 입장에서 현 상황을 꾸짖는 모양새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그를 향한 여론은 점점 더 안 좋게 흘러가고 있다.

◇상황인식 안이한 성명이 논란 더 키워=문 의원은 성명 첫 마디로 “우리 정치가 참 혼란스럽다”고 운을 뗐다. 이어 “NLL 논란이 해소되나 했더니 더 꼬여간다. 지켜보는 국민들은 피곤하고 짜증스럽다”고 했다. 또 “아직도 여러 모로 부실한 국가관리 시스템과 법적 불비를 더 튼실하게 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오히려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사초 실종’ 사태로 쇼크를 받은 마당에 문 의원의 상황인식이 너무 안이하다는 지적이 여야 모두에서 나오고 있다. 또 전체적 뉘앙스가 마치 현 상황에서 자신은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발언으로도 해석된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무엇보다 대화록이 실종된 경위에 대한 설명이 언급돼 있지 않아 황당하다는 반응이 많다. 대화록 이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인 상황이고, 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이관에 전반적 책임이 있는 당사자이면 실종 사태에 대해 알고 있는 범위에서라도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게 순서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논란을 종식시키자고 제안하면서도 성명에서 정상회담 전후의 기록으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2007년 당시 국방부 장관인 현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을 언급했다. 여권에서 문 의원이 계속 논란을 이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대목이다.

◇문재인 및 친노계 위상 급추락할 듯=국회 차원의 조사에서 국가기록원에 정상회담 대화록이 없다고 결론이 내려지면서 친노(親盧·친노무현)계의 ‘원본 공개’ 요구가 결국 패착이었다는 평가가 많아지고 있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도 “문 의원과 친노계가 여권의 잘 짜인 포로 작전에 잘못 걸려든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이 현재의 수세에 몰리게 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 문 의원과 친노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런 목소리는 당 지도부 주변에서 더 크게 들리고 있다.

핵심 당직자는 “친노계와 일부 강성파가 그동안 지도부에게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고 일을 처리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그 때문에 당이 얼마나 망신을 당했느냐. 이제 책임질 건 책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때문에 향후 문 의원과 친노계는 당의 중심에서 한동안 배제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판 여론을 반전시킬 특단의 카드를 내놓지 않는 한 문 의원이 대선주자로서 다시 조명받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친노계 세(勢) 역시도 급격히 무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같은 기류는 10월 재·보궐선거는 물론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역학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손병호 김동우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