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조세정책, 결국 월급쟁이 지갑 털겠다?
입력 2013-07-23 17:55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면세 범위를 줄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반면 법인세는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소득자와 기업의 부담은 덜지만 소득이 100% 노출되는 ‘월급쟁이’들의 삶은 더 팍팍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은 23일 조세정책 방향 공청회를 열고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획재정부의 정책 용역을 수행한 국책 연구기관의 의견으로 다음달 발표되는 정부의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연구원은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세수는 늘리고 법인세 부담은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201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평균 44.4%를 소득세와 소비세로 조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31.9%에 불과했다.
연구원은 복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재 부가가치세 면세 영역인 금융과 의료영역, 학원 등을 과세 범위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을 인출할 때 붙는 수수료에 부가가치세를 매기는 식이다.
소득세수 확보를 위해 간이과세, 소득공제 등 면세 범위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법인세는 과표 구간을 단순화하는 등 과세 비중을 낮추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연구원은 또 재산세의 경우 거래세는 낮추고 보유세는 높이면서 양도소득세 중과제도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종합부동산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방안도 거론했다.
연구원의 보고서는 복지재원 등 돈 쓸 곳은 많은 상황에서 “증세는 없다”는 현 정부의 입장에 서서 이를 배제한 세수 확충 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고소득자와 기업의 부담은 덜어지고 그 부담이 오롯이 근로소득자에게 돌아간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부가가치세 면세 범위 축소의 경우 일반 서민이나 고소득자나 똑같이 정률적인 세금을 부담하게 되면 결국 서민에게 부담이 가중되는 셈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근로소득자는 월급을 받고 소득세를 낸 뒤 남은 돈으로 소비를 하는 것인데 부가가치세를 더 내야 한다면 결국 월급쟁이에게 부담이 증가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중장기 조세정책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세무학자는 “10년 전 관여했던 중장기 조세정책 수립 내용과 이번 보고서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며 “중기라 하면 빨라야 집권 3년차일 텐데 그때 정부가 세제 개혁을 이끌어낼 추진력이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