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 관두겠다던 文, “이젠 차분해지자”고

입력 2013-07-23 18:02

본인이 알고 있는 사실 소상히 밝히는 것이 도리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논란과 관련해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상세하게 밝히는 것이 옳다. 정상회담 전후에 노무현 전 대통령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현재로선 문 의원만큼 진실을 가깝게 아는 사람이 없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있다면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배수진과 함께 논쟁을 확산시킨 당사자이기도 하다.

국가기록원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없다는 사실은 보통 일이 아니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 전문가까지 동원돼 검색했으나 대화록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사태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도 문 의원이 23일 ‘이제 NLL 논란은 끝내야 한다’는 요지로 낸 성명은 이번 사태를 너무나 가볍게 보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문 의원은 대화록이 없다는 상황의 규명은 여야가 별도로 논의하면 될 일이니 NLL 논란은 여기서 끝내자고 제안했다.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에 의하더라도 NLL 포기가 아니라는 것이 다수 국민의 의견이라며 정상회담 전후의 기록들로 진실을 규명하자고 촉구했다. 자신이 먼저 국가기록원 대화록을 공개하자고 제안해 이렇게까지 급박하게 진행된 상황에서 기록원에 대화록이 없다면 다른 구실을 만들기 전에 사과하는 것이 도리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면 노 전 대통령 측이 이 자료를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았거나 넘기는 과정에서 누락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이는데도 문 의원은 아무런 설명이 없다.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을 제정한 참여정부 핵심인사로 다른 문건도 아닌 남북 최고 수뇌의 회담 기록이 사라졌는데도 마치 남의 일처럼 언급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논란은 국민들에게 아무 이득이 없는 정쟁의 성격이 강했다. 이면에는 지난 대선 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해 결과가 뒤집어졌다고 믿고 싶어 하는 야권과 국정원 국정조사를 어떻게든 피해보려는 여권의 정략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이 국가기록원까지 뒤진 지금에 와서는 NLL 관련 발언의 진실뿐 아니라 대화록 실종사태가 더욱 큰 쟁점으로 부각됐다는 사실을 문 의원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더욱이 문 의원은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정상회담 준비위원장도 겸했다. 그런데도 대화록 실종과 관련해 본인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이 논쟁을 끝내자니 무책임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문 의원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서 유효 득표의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얻은 유력한 정치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다음 대선에 나설 가능성도 남아있다. 적지 않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유력 정치인이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된 대화록 실종사태를 나 몰라라 외면한다면 기대를 저버리는 길밖에 되지 않는다. 당당하게 본인이 알고 있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진정으로 이 논란을 끝낼 첩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