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외래해충의 습격

입력 2013-07-23 18:14

프랑스인들은 1859∼60년 미국에서 수입한 포도 묘목에서 그때까진 유럽대륙에서 볼 수 없었던 아주 작은 벌레를 보게 된다. 미국 포도나무에 자생하는 진딧물 일종인 크기 1㎜ 정도의 ‘필록세라’라는 벌레다. 오랜 세월 이 벌레에 노출된 미국 포도나무는 어느 정도 저항성을 갖고 있었지만 프랑스 포도나무는 그러지 못했다.

프랑스 전역으로 퍼진 필록세라는 프랑스 포도밭의 70% 이상을 황폐화시켰고, 무서운 속도로 유럽의 다른 포도밭을 폐허로 만들었다. 인접국 독일은 필록세라 유입을 막기 위해 1872년 ‘포도해충 예방령’을 공포하고 포도 묘목 수입을 원천봉쇄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수입식물 검역제도의 효시다. 우리나라에선 일제 강점기인 1912년 과수 및 벚나무 묘목검사규정이 제정돼 식물검역이 시작됐다.

물자 이동과 교역량이 늘어나면서 과거와 달리 국내로 유입되는 외래해충 종은 시나브로 늘고 있다. 지난 30년간 국내 유입된 외래해충은 25종으로, 그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최근 3년 사이에 들어왔다고 한다. 현재 농가와 산림 등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주요 외래해충은 꽃매미, 담배가루이, 감자뿔나방, 미국흰불나방 등이다. 이로 인한 피해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뽕나무, 포도나무 등의 줄기나 가지를 가해하는 꽃매미는 2004년 충남 천안에서 처음 확인됐다. 아열대인 중국 남부에서 건너온 꽃매미는 기후온난화로 우리나라 기후에도 완전 적응했다. 그 피해면적은 2007년 7㏊에 불과했으나 2008년 91㏊, 2009년 2946㏊, 2010년 8378㏊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1998년 충북 진천군 장미재배지에서 첫 확인된 담배가루이는 장미, 토마토, 오이, 참외, 가지, 호박, 수박 등에 큰 피해를 주며, 25종 이상의 바이러스병을 옮긴다. 특히 토마토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옮겨 ‘토마토 저승사자’로 불린다. 게다가 일부 살충제에 저항성을 가진 새로운 생태형이 등장해 시설농가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각각 2010년과 2009년 국내에서 첫 발견된 갈색날개매미충과 미국선녀벌레가 남부 지방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다.

이들 외래해충은 발생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데다 천적이 있는 경우가 드물고, 적절한 방제약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아 퇴치가 쉽지 않다. 정부가 나름대로 철저하게 검역하고 있으나 해충 유입을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앞으로 또 어떤 못된 놈들이 들어올까 걱정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