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시진핑의 고민

입력 2013-07-23 17:31


중국공산당 간부 교육기관인 중앙당교의 기관지 학습시보(學習時報) 지난 8일자에 눈길을 사로잡는 논평이 실렸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마오쩌둥(毛澤東)식 ‘군중 노선’ 캠페인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군중 노선은 당 지도부가 군중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이념이다. 마오쩌둥이 인민들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보완책으로 제시했다.

중앙당교 내 공산당 역사 전문가인 리하이칭(李海靑)은 이 글에서 “군중 노선은 민주주의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시진핑이 진정으로 군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면 민주적 개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게 그 요지다.

이보다 석 달가량 전인 4월 19일. 당 중앙정치국 회의는 올 하반기부터 1년가량 대대적인 군중 노선 교육실천 활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6월 18일 베이징에서는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군중 노선 교육실천회의가 열렸다.

시진핑은 이 회의에서 “형식주의, 관료주의, 향락주의, 사치풍조 등 4대 악습을 추방하라”고 강조했다. 전국 현(縣) 정부 과장급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마오쩌둥식 캠페인을 전개할 것임을 공식 선언한 셈이다.

바로 그 뒤 6월 22일부터 1주일 동안 중앙정치국회의가 소집됐다. 이 회의에서는 시진핑이 지난해 11월 당 총서기에 등극한 뒤 전개해온 반부패운동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두 달 이상이나 준비한 끝에 당시 회의가 열렸다고 전했다. 즉 류윈산(劉雲山) 선전 문화담당 상무위원을 비롯해 시진핑의 신뢰를 받고 있는 자오러지(趙樂際) 중앙조직부 부장, 리잔수(栗戰書) 중앙판공청 주임, 자오훙주(趙洪祝) 중앙서기처 서기 등은 지난 5∼6월 사이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낸 당 원로들을 두루 만났다.

이뿐 아니라 중앙과 지방의 원로 간부도 500명 가까이 접촉했다. 부패 척결을 둘러싼 그들의 견해를 듣기 위해서였다. 이를 두고 기득권층의 반발을 무마하려는 수순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일부 학자들은 시진핑의 리더십에 벌써 힘이 빠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금 군중 노선 캠페인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상무위원 7명은 지난 5일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각 지방에서 일반 백성들과 세상사를 얘기하면서 군중 노선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진핑이 혁명 성지 시바이포(西柏坡)를 찾은 것도 이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다.

사실 시진핑이 총서기가 된 직후 사치와 낭비 풍조를 금하는 ‘8개항 규정’을 발표하고 법치를 강조할 때만 해도 정치개혁에 대한 기대는 한껏 고조됐었다. 법에 의한 지배는 자칫 당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희망은 많이 퇴색됐다. 무엇보다 좌파적인 캠페인에 의존하는 방식은 또 다른 형식주의를 낳을 뿐 당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구쑤(顧肅) 난징대 교수는 이에 대해 “정치 개혁 없는 반부패운동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개혁 조치는 당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명제를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올 가을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18기 3중전회)에서 그가 제시할 정치 노선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