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봉준호 감독 ‘설국열차’… 현대판 ‘노아의 방주’ 그 속의 계급 반란

입력 2013-07-23 17:04


제작비 400억원 투입, 전 세계 167개국 사전 판매, 8월 1일 한국을 비롯해 북미 프랑스 일본 동남아 등 월드와이드 개봉. 올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관심을 모은 봉준호(44) 감독의 ‘설국열차’는 한국을 넘어 세계 영화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주목 받았다. 22일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설국열차’는 그런 기대감에 부응했다.

영화는 2014년 빙하기를 맞은 인류의 위기에서 출발한다.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특수 화학성분을 살포한 것이 오히려 빙하기를 초래하게 된다. 대부분의 인류가 죽고 남은 사람들이 엔진이 영원히 멈추지 않는 설국열차에 올라탄다. 이곳은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 타는 꼬리칸과 가진 자들이 온갖 향락을 즐기는 앞칸으로 구분돼 있다.

생존자들이 탑승한 열차 속 ‘노아의 방주’는 폭력과 차별이 공존하는 세계의 축소판과 다름없다. 앞칸의 지배자들은 꼬리칸에 탄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리와 질서를 지킬 것을 강요한다. 명령에 불복종하면 가차 없는 폭력이 가해진다. 열차는 강요된 질서에 순응하며 영원히 순환할 것인가, 아니면 닫힌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선택은 꼬리칸 사람들의 용기에 달렸다.

폭압적인 삶에 반기를 든 커티스(크리스 에번스)는 정신적 지주인 길리엄(존 허트), 친동생 같은 에드가(제이미 벨), 아이를 잃은 엄마 타냐(옥타비아 스펜서) 등과 함께 반란을 준비한다. 열차의 설계자인 남궁민수(송강호)와 그의 딸 요나(고아성)를 감옥에서 꺼내 닫힌 문을 열어젖힌다. 앞칸으로 계속 나아가는 과정에서 진압군과의 피투성이 싸움이 전개된다.

‘설국열차’는 봉 감독이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 등에서 선사했던 한국적인 드라마나 소소한 잔재미가 별로 없다. 열차 칸마다 화려한 장식과 쇼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17년 동안 계속 달리고 있는 열차라는 공간의 한계가 드러난다. 관객은 꼬리칸 사람들과 앞으로 나아가며 전복의 쾌감을 맛보다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질서’에 대한 묵직한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유머러스한 장면도 있다. 송강호의 눙치는 한국어 대사가 영어 번역기를 통해 전달되는 과정에서 웃음을 선사한다. 열차 안 총리인 메이슨 역의 틸다 스윈튼, 열차의 1인자인 윌포드 역의 에드 해리스 등 할리우드 명배우들의 연기도 볼만하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개성 있게 담아낸 봉 감독의 새로운 스타일에 세계 관객들이 얼마나 호응할지 주목된다. 15세 관람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