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깨달았죠, 우리 인생도 욕심내면 낭패란 걸…
입력 2013-07-23 17:16
36박37일 ‘산티아고 순례길’ 재도전 ‘예순살 청춘’ 송영록씨
며칠 전 예순 번째 생일을 맞은 송영록씨. 나이 들수록 웃는 일이 줄어들게 마련인데 그는 눅눅한 데다 기온까지 높아 짜증이 절로 나는 요즘에도 혼자서 미소 짓곤 한다. “빌바오에서 시작해 산탄데르, 오비에도, 메리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거쳐 피스테라까지 36박 37일에 걸쳐 800㎞를 걸을 계획입니다.” 내년 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을 생각을 하면 벌써 발바닥이 근질근질해지면서 입이 슬며시 벌어진다는 그다.
‘환갑’을 지낸 그가 한 달여에 걸쳐 800㎞나 걷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지난 19일 서울 역삼동 ‘시니어파트너스’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문제 없다’고 큰소리 쳤다. 그리고, 지난해 봄, 30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길을 걸으면서 받은 스탬프와 ‘2012년 3월19일’ 콤포스텔라 성당이 수여한 완주 증명서를 내보인다. 초행길이 아니란 얘기다.
“우리나라 길들을 걸으면서 다리에 힘이 생기니 스페인 순례자의 길을 한번 걸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욕심으로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에게 ‘마음을 비우는 법’을 가르쳤다. 보폭이 큰 서양 젊은이들과 맞춰 걷다 발목이 탈나는 낭패를 겪으면서 그는 “내 페이스를 지켜야지, 욕심냈다가는 큰일나겠다” 싶었다. 휙 내달아가는 옆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힘에 맞춰 걸으면서 그는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지치고 힘겨워 그만 두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자신과의 위대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걸어 성당에 도착했다. 5㎏이나 빠졌고 허리도 2인치나 줄어들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했지만 마음만은 여유롭고 풍성했다.
“내년 봄에는 마음 맞고 달란트(재주)가 풍부한 두세 명과 함께 가려고 합니다. 숙소나 거리에서 한국을 알리는 공연을 해볼까 해서요.”
그는 그래서 ‘고행길’로 알려진 순례길을 행복한 ‘소풍 길’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또, 후원자도 나섰으면 좋겠다고 했다. 1㎞ 걷는 데 쌀 1㎏을 기부 받아 어려운 이웃을 돕고, 노장들의 순례를 널리 알려 ‘나이 들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또래들에게 심어주고 싶어서다.
800㎞ 대장정에 두 번째 도전하는 그도 50대 중반까지도 걷기와는 무관했다. 해외 부동산 투자회사에서 근무했던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때 자의반 타의 반 회사를 그만 두면서 워킹화를 신었다. ‘내 건강은 내가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걷기 시작했다’는 그는 두발로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보니 차를 타고 휙휙 지나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 왔다. ‘서울 시내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놀랍더란다. 서울을 섭렵한 그는 지방으로 보폭을 넓혔다.
“12월에 동해 바닷길을 걷는데 서울보다 따뜻해서 놀랐어요. 포항에선 과메기를 청어가 아닌 노르웨이산 꽁치로 만들더군요.”
우리나라 곳곳을 걸으면서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남해의 한 마을에선 ‘18년이나 이곳에 살았지만 외지인으로 배척받고 있다’는 하소연을 들으면서 귀촌이 쉽지 않다는 사실도 엿봤다.
혼자 걷던 그는 2011년 시니어포털사이트 ‘유어스테이지(www.yourstage.com)’의 시니어리포터로 활동하면서 ‘프리맨의 도보여행’을 만들었다. ‘뒷방 늙은이’이기를 거부하고 활기찬 삶을 살고 있는 50,60대 ‘뉴시니어’ 55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서 모여 1,2시간씩 걷고 있다.
“직장을 그만 둔 다음 집에 있으면 와이프와 싸움밖에 안 합니다. 움츠러들지 말고 워킹화 한 켤레 마련해서 걸어 보세요.”
그는 퇴직한 남성들은 물론 갱년기를 맞은 여성들도 햇살을 맞으면서 걸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걷기를 시작한 다음 예전 사진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세월은 흐르는데 얼굴은 외려 젊어지고 있어서다. 뿐만 아니다. 글을 쓰는 즐거움도 얻었다. 지난해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31회에 걸쳐 ‘유어스테이지’에 연재했다. 뉴시니어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워서 여간 즐거운 게 아니다.
“걸으면서 몸과 마음이 젊어지니 일거리도 생기더군요.”
말레이시아에 우리나라 강소기업들의 기술력을 소개하는 일을 최근 시작했다는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도 전에 벌써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북미대륙을 차를 타고 횡단하면서 좋은 길이 나오면 걷고 싶다”고. 꿈꾸는 한 청춘이라고 했다. ‘환갑 청춘 송영록’, 그는 오늘도 워킹화 끈을 다잡아 맨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