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행복한 은퇴·고령사회는 없나… 전영수 한양대 특임교수에게 듣는다

입력 2013-07-23 16:54


“일과 인간관계가 행복한 노후의 기초조건”

한국의 인구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65세 이상 인구비율인 고령화율은 지난해 11.8%로 세계 최고인 일본의 24.1%보다 한참 낮지만 속도는 일본을 앞선다. 그 때문인지 요즘 우리 사회의 주요 관심사는 노년, 노후, 정년, 은퇴 등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은퇴 및 노후 문제를 깊이 파헤친 연구보고서 시리즈가 화제다. 주인공은 전영수(41)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은퇴위기의 중년보고서’(2013)는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2011)와 ‘장수대국의 청년보고서’(2012)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은퇴 3부작은 일본의 고령사회 문제를 고령자, 청년, 중년 등 전 연령대의 입장에서 꼼꼼히 따져보면서 한국에의 시사점을 도출한 데 의미가 크다. 전 교수를 지난 18일 서울 행당동 연구실에서 만났다.

# 은퇴·노후는 전 연령대 관심 가져야

40대 초반의 소장학자가 은퇴·노후 문제에 괄목할만한 연구 성과를 냈다는 점이 우선 궁금했다. 이에 전 교수는 “은퇴·노후 문제는 전 연령대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슈”라고 잘라 말한다.

- 은퇴·노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원래 전공분야는 가계의 자산운용 환경 및 전략분석이라서 저성장·고령화라는 시대변화의 흐름을 감안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2009년 일본 정부 초청으로 도쿄에서 1년간 체류하면서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돼 일본 개별가계의 은퇴이슈에 대한 대응태세 등을 살펴봤다.”

- ‘은퇴위기의 중년보고서’로 완간한 3부작 시리즈를 자평한다면.

“지난 3년 동안 은퇴위기로 상징되는 생존전략을 연령대별로 분리해 접근했다. 앞서 발표한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와 ‘장수대국의 청년보고서’는 각각 고령층과 청년층이 직면한 은퇴위기를 다룬 것이고, 그리고 이번 보고서에서는 중년층이 직면한 여러 현실과 대응전략에 대해 엮어봤다.”

- 일본의 은퇴위기 대응이 한국에도 적용 가능한가.

“위기의 실체가 매우 유사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압박하는 각종 한계가 수두룩한 가운데 현실적으로 이를 해결할 제반여건은 기대 이하다. 사회적 안전망은 일본이 전반적으로 우리보다 낫다고 볼 수 있으나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란.

“적자생존·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면서 사회안전망은 부실해졌고 노후 책임은 고스란히 개개인의 숙제가 됐다. 이미 은퇴한 노인층 일부의 암울한 빈곤현실, 재정을 포함한 자원배분 갈등(세대전쟁)을 체감하는 청년그룹의 절망, 여기에 은퇴에 임박해 경제활동에서 떼밀려날 수밖에 없는 중년세대의 고민이 그것이다.”

- 3부작이 모두 ‘∼보고서’라고 돼 있는데.

“현상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둔 결과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은퇴·노후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도 같은 이슈를 다룬 보고서가 적지 않지만 전 연령대의 문제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 老老격차가 노인빈곤 불러

전 교수의 은퇴 시리즈는 은퇴·노후문제가 고령층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각별히 강조한다. 그렇지만 각 인구계층별 문제인식과 현안은 조금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들어 연령대별로 나눠서 물어보았다.

- 보고서에서 은퇴한 고령세대의 빈곤문제를 특히 강조했는데.

“일본의 경우 개별적인 노후 빈곤은 없을 것으로 봤으나 실상은 사각지대 빈곤노인이 적지 않다. 가계 금융자산 1500조엔 중 60∼70%를 65세 이상이 쥐고 있지만 노노(老老) 격차 또한 심각했다. 이른바 노인복지의 틈새 현상이다. 최근 무연사회, 고독사 등 사회문제의 배경이 바로 고령빈곤이다.”

- 일본은 일찍부터 연금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았나.

“일본은 공적연금만 1·2층, 그 위에 기업연금을 얹힌 3층 구조로 돼 있고, 여기에 개인연금까지 포함하면 4층의 중층적인 연금구조다. 하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낮은 연금 수급자와 무연금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노후자금이 부족한 은퇴자의 문제다.”

- 노후자금 마련은 일본은 물론 모든 나라의 공통과제다. 해법은 뭐가 있나.

“노후자금은 바로 생활자금과 직결돼 있다. 이를 위한 방법은 꾸준한 근로소득과 안정적인 자산소득 확보다. 그만큼 노후에 진입하기 전 일자리 관리와 노후의 일자리 제공이 중요하다.”

- 은퇴를 앞둔 중년세대의 최대 고민거리는 일자리다. 보고서는 이를 ‘직장위기’라고 했다.

“중년 일자리는 분명 청년과 노인층의 고용환경보다 유리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게 오래갈 것 같지 않다. 상시적인 구조조정, 중년 자체가 특유의 고비용 인력층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탈락하는 대표적인 집단이 될 확률이 높다. 바로 중년층 고용불안이요 직장위기다. 여기에 조기퇴직으로 창업한들 성공확률은 낮다. 창업이 실업 탈출구라지만 실은 빈곤계층으로 전락하는 미끄럼틀이다.”

- 노후자금을 위한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가족갈등도 유의해야 한다고 보고서에서 주장했는데.

“그간 한·일 양국의 가장들은 한평생 회사인간으로 살아왔다. 잔업을 권하는 사회에 익숙해졌다는 것은 반대로 회사 이외엔 그들의 공간과 의지처가 없다는 얘기다. 일자리를 잃었을 때 가족갈등이 분출되는 이유다. 이 경우 가족붕괴는 시간문제다. 고독한 남편과 우울한 아내의 심상찮은 집안공기는 자녀와의 단절을 가속화한다. 황혼이혼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 모든 위기변수들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 정년연장은 계속돼야 한다

전 교수는 은퇴·노후의 행복 조건으로 일자리와 사람을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란 “인관관계, 즉 돈으로 살 수 없는 네트워킹 문제”라고 그는 지적하면서 “가족을 비롯해 친구, 지역사회, 시민단체 등과의 소통이 일자리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제 겨우 일자리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최근 한국에서도 정년연장 방안이 발표됐다.

“저성장시대를 맞으면서 자산소득의 기대수익이 낮아져 근로소득의 중요성이 커졌다. 정년연장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 정년연장과 관련해서는 기업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정년연장은 연금재정 안정 차원에서 마련됐다. 하지만 이를 두고 기업이 부담으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기업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정년연장을 수용하도록 하는 제도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어떤 장치인가.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적절하게 구사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보면 연령차별을 없애 누구든 원하면 일정한 근로소득을 얻도록 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을 감안해 기업들이 중장기적으로 그에 적합한 임금·고용제도를 개선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

- 노후의 행복조건은 경제적인 측면만은 아닐 텐데.

“당연하다. 돈이 중요하지만 그것만 갖고 행복한 노후를 즐길 수 없다. 한·일 양국처럼 고도성장을 겪고 ‘남성전업·여성가사 모델’의 전통이 뿌리내려 있던 나라의 경우 특히 남성 은퇴 이후의 연착륙 장치가 필요하다. 아마도 소일거리와 연결된 취미나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인간관계는 가족을 비롯해 지역단위 등에서 활기찬 인생 2막을 위해 참여장벽을 낮춘 자발적이고 생산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좋다. 사회봉사를 통해 현역시절 구축한 경험과 노하우를 환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 청년들이 ‘1인분 역할’ 할 수 있도록 해야

- 노후 문제를 논하는 시리즈에 굳이 청년층 문제를 포함시킨 까닭은.

“청년층의 절망과 반발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노후준비는커녕 당장의 호구지책조차 힘든 숙제다. 저성장·고령화의 희생양으로, 강제동원의 하류인생 신세로 전락했다는 박탈감이 짙다. 시대상황이 야기한 하류인생으로의 강제는 사회와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다. 노후가 탄탄하고 지속적이려면 이를 지지·응원하는 현역세대의 무난하고 건실한 인생경로가 대전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 보고서에서 청년들을 향해 ‘1인분 역할’ ‘1인분 인생’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인생·사회조직을 등산에 비유하면 청년들은 등산로 입구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열심히 올라가야 그들의 인생이 힘을 얻으며 결과적으로 사회가 안정된다. 졸업과 함께 취업, 결혼, 출산 등 라이프사이클이 건강하게 유지될 필요가 있다. 이게 바로 ‘1인분 인생’이다. 그게 안 되면 포기 혹은 반격이 시작된다. 만혼(晩婚)과 비혼(非婚)에 따른 저출산 추세의 안착은 사실상 청년층이 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공격무기다. 이들의 원활한 사회 데뷔는 그래서 중요하다.”

- 청년층이 1인분 인생 역할을 감당하려면.

“건실한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후속 세대의 1인분 인생이 제대로 보장돼야 한다. 기성세대는 이들을 안정시킬 의무가 있으며 현재의 중년층을 위해서도 필요한 방향이다. 제도적 차원에서 청년층 고용문제를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 개인의 몫, 국가·사회의 몫 감당을

마지막으로 연령 불문하고 은퇴·노후 문제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요건과 이를 마련할 수 있는 해법을 화제로 삼았다. 인터뷰의 주제가 ‘행복한 은퇴·노후는 없나’이기 때문이다. 이에 전 교수는 “빈곤으로 치환되는 은퇴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없다”고 단언한다.

- 그렇다고 각성제만 투여해 시간만 벌 수는 없지 않나.

“은퇴는 이제 개인영역에서 벗어났다. 가계에서 어느 정도 감당하되 그 수위를 벗어나면 지역과 국가가 나서 은퇴 갈등을 줄이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중요한 게 정부 정책이다. 정책은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효율적인 관리만으로도 기대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은퇴가 빈곤이고 이것이 복지 이슈라면 당장 시급한 것은 한정된 복지재원일지언정 이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전달체계의 재편이다.”

- 일본의 현실과 비교해 한국의 은퇴위기 상황은 어느 정도인가.

“고성장에서 저성장으로 전환 중이지만 일본은 아직 기업복지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 그나마 고무적이다. 이를 종합할 때 일본의 은퇴환경은 과락 수준이 아닌 70점 정도다. 반대로 한국은 아쉽게도 과락을 면치 못하는 수준으로 보인다. 개별적인 자구노력 말고 외생적인 은퇴(빈곤)지원을 크게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행복한 은퇴·노후는 없다는 뜻인가.

“문제의 본질은 이제 분명해졌다. 그렇다고 그 모든 문제가 당장 해결될 수도 없다. 전 연령대의 시민이 관심을 갖고 개인이 해야 할 일과 국가·사회에 요구할 일을 구별하면서 하나씩 만들어 쌓아간다면 우리도 비로소 행복한 노후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만난 사람=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전영수 교수는

주 전공 분야가 국제금융, 일본경제로 특히 기존 학계에서 소홀히 다루기 쉬운 자산운용 문제를 소비자 입장에서 연구해온 소장학자다. ‘한·일 가계의 노후 대비 관련 자산운용 환경 및 전략 비교’(2008)로 한양대에서 국제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자 출신인 데다 현안 이슈 파악 능력이 뛰어나 연구자로서는 물론 신문·잡지·방송 등 각종 미디어에서 경제·금융 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소장학자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수의 저작을 발표해왔다. 최근 10년 동안 10여권의 투자 입문서를 냈으며 이번에 완간한 은퇴·노후 관련 3부작을 비롯해 ‘글로벌 금융위기 대안 모델’(2012), ‘그때는 왜 지금보다 행복했을까-일본의 기업복지’(2012) 등 전문서를 포함하면 총 18권에 이른다.

약력=△1997년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졸업 △2008년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국제경제학 박사 △2011년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학과 특임교수(현) △1999년 서울경제신문 주간국 기자 △2004년 한경비즈니스 금융팀장 △2009∼2010 일본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 △2011년 한일경상학회 이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