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金 대화록’ 증발] 盧, 선의로 안넘겼다? MB정부 삭제?… 設만 난무
입력 2013-07-23 05:03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발견되지 않음에 따라 ‘대화록 실종 미스터리’가 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여야의 대통령지정기록물 열람위원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인 것은 물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측 김경수 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조차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렇다면 ‘대화록 실종’의 진실은 뭘까.
22일까지 드러난 각종 사실과 정황으로 추정해볼 때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일단 높아 보인다. 그럴 경우 노무현정부가 넘기지 않았거나 이명박정부에서 건드렸을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노무현정부가 넘기지 않았을 경우 노 전 대통령이 ‘선의(善意)’로 넘기지 않았을 가능성을 우선 들 수 있다.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도 지난 2월 검찰이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 등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할 당시 참고인 진술에서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 관리를 국가정보원이 하라는 취지로 언급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조 전 비서관 얘기는 문서 대화록 관리를 의미한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의 의중이 그랬을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차기 정부가 이전 정부의 기록을 적극 활용하도록 하기 위해 대통령기록물을 열심히 남겼다. 하지만 대화록을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넘기면 30년 뒤에나 열람할 수 있어 아예 대화록 관리 주체를 국정원으로 해서 다음 정권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할 때 참고할 수 있게 ‘배려’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원본을 국정원에 1부만 남기고, 청와대에는 아예 대화록 자체를 없앴을 수 있다. 특히 노무현정부 청와대의 문서관리스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에 ‘삭제’ 기능이 있다는 주장도 있어 노 전 대통령 또는 누군가 필요에 의해 문서 대화록과 함께 전자기록도 삭제했을 개연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국가기록원으로 진짜 넘겼는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넘겼다는 기록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김 전 비서관은 “대화록이 청와대 안보정책실을 거쳐 이지원에 보고가 됐다는 것은 (거의 자동적으로)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지원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된 대화록이 최종 재가가 났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아울러 이지원 시스템→청와대 내부 기록관리시스템→대통령기록관 기록관리시스템 등으로 자료가 순차적으로 변환 및 이관되면서 실무자의 단순 실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 전 대통령 측 관계자도 “정권 이양기로 정신없었고 당시 넘길 자료도 워낙 방대하긴 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이명박정부에서 대화록을 열어보거나 삭제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지만 구태여 삭제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이명박정부가 열람하는 과정에서 조작 실수로 지워졌을 수도 있다. 이 경우 향후 검찰 수사가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기록원 측이 항온항습 체크나 구동확인 등 ‘관리 차원’에서 건드렸다가 실수로 지워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기록물 원본과 봉하마을 사본 등 모든 버전에서 한꺼번에 없어지기도 쉽지 않다. 외부 기관의 해킹설 역시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봉하마을 사본까지 삭제하는 건 힘들다는 점에서 개연성은 크지 않다.
손병호 김동우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