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미켈슨 기어코 브리티시 오픈 정상… 뮤어필드도 가족애에 감동

입력 2013-07-23 05:12

일요일 아침, 필 미켈슨(43·미국)은 밥을 먹다가 아내 에이미(40)에게 말했다. “여보, 오늘 클라레 저그(Claret Jug·브리티시오픈 챔피언에게 수여되는 은제 술 주전자)를 가져올게.” 에이미는 남편의 약속을 믿고 싶었지만 속으로 웃었다. 미켈슨이 제142회 브리티시오픈 마지막 날 4라운드를 앞두고 선두에 5타나 뒤져 있었기 때문. 그러나 미켈슨은 5타의 열세를 기어이 뒤집고 아내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는 클라레 저그를 들고 아내와 진한 키스를 나눴다.

◇가족 품은 미켈슨 ‘나 홀로 꿋꿋’=이번에도 에이미를 비롯해 두 딸(아만다 14세·소피아 12세) 그리고 아들(에반·10세)은 대회가 열린 영국 스코틀랜드 뮤어필드 링크스(파71·7192야드)로 총출동했다. 가족을 가슴에 품은 미켈슨은 강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버디 쇼’를 벌였다.

미켈슨은 21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뮤어필드 링크스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에서 보기는 1개로 막고 버디는 6개나 낚아 5언더파 66타를 기록했다. 합계 3언더파 281타를 적어낸 미켈슨은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이 대회 20번째 출전 만에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우승 상금은 95만4000 파운드(약 16억2000만원). 경기가 끝난 뒤 열린 시상식 내내 에이미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남편이 정말 자랑스러워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미켈슨의 가족사랑은 PGA 투어에서 정평이 나 있다. 미켈슨은 2009년 에이미가 유방암 선고를 받자 투어 생활을 중단하고 간호에 매달렸다. 1999년 US오픈에서는 에이미가 출산을 앞두고 있자 무선 호출기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서면서 “아기가 나올 것 같다고 하면 곧바로 대회를 포기하고 귀가할 것”이라고 했다. 당시 미켈슨은 준우승을 차지했고, 아만다는 대회가 끝난 다음날 태어났다. 또 지난 6월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는 아만다의 졸업식에 참석하느라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로 날아갔다가 밤새 3800㎞를 날아 1라운드 경기 당일 새벽에 대회장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 도전=미켈슨은 이전까지 마스터스에서 3승(2004년, 2006년, 2010년), PGA 챔피언십 1승(2005년)을 포함해 메이저대회에서 네 차례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유독 유럽 대회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주 열린 유럽프로골프투어 스코틀랜드 오픈에서 우승한 데 이어 브리티시 오픈까지 제패해 ‘유럽 징크스’를 떨쳐냈다. 미켈슨은 이제 US오픈 우승컵만 거머쥐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또 운 우즈=‘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8·미국)는 대회 마지막 날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2위로 시작했지만 3타를 잃고 공동 6위(2오버파 286타)로 밀려났다. 2008년 US오픈 우승을 포함해 통산 14차례 메이저대회 정상에 오른 우즈는 마지막 날 선두로 출발하지 못하면 역전 우승을 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깨뜨리지 못했다. 우즈와 동반 플레이를 펼친 애덤 스콧(33·호주)의 캐디는 우즈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스티브 윌리엄스였다. 윌리엄스는 우즈와 결별한 뒤 인종 차별 발언 등으로 우즈의 신경을 긁었다. 이 때문인지 우즈는 승부처에서 좀처럼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우즈와 윌리엄스는 경기 후 악수를 나누며 외형적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윌리엄스는 우즈에게 “오늘 아주 잘 싸웠다”고 격려한 뒤 가볍게 우즈의 어깨를 두드리기도 했다. 우즈의 새 캐디인 조 라카바는 “오늘 라운드 중 우즈와 윌리엄스가 나란히 걸어가면서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를 나눴다”며 “(관계 복원을 위한) 윌리엄스의 노력을 우즈가 받아들여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