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대 오토바이족, 경찰청 들이닥쳐 ‘단속’ 항의
입력 2013-07-23 05:08 수정 2013-07-22 22:02
지난 9일 서울지방경찰청 로비에 40∼50대 중년 남성 10여명이 나타났다. 군복을 입은 미국인도 끼여 있었다. 이들은 오토바이 동호회 대표들이다. 경찰이 대대적인 오토바이 불법개조 단속에 나서자 ‘항의방문’을 온 거였다.
이들은 경찰청 인사를 만나 “우리를 탄압하지 말라”며 따졌다고 한다. 자신들은 봉사활동도 하면서 건전하게 오토바이를 타는데 왜 폭주족으로 모느냐는 것이다. “단속 기준을 낮추도록 법 개정 운동을 하겠다” “인권위원회에 제소하겠다” “단속에 걸려도 계속 타겠다”며 한참 항의한 뒤 돌아갔다. 지난달 말에는 가죽점퍼 차림의 동호회 회원 서너명도 방문했다.
경찰은 지난달 13일부터 불법 구조변경 차량 일제단속을 벌이고 있다. 서울경찰청 교통범죄수사팀은 “한 달 만에 1855건을 단속했는데 그중 1592건이 오토바이”라고 밝혔다. 1391건은 범칙금·과태료 처분이 내려졌고, 형사입건된 201건 중 가장 많은 건 ‘소음기’(135건) 개조였다. 소음기를 떼어내고 굉음을 울리며 도심을 누비다 적발된 것이다(사진).
경찰은 ‘오토바이 소음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무리지어 주택가를 누비는 오토바이 소음에 못살겠다는 112 신고가 그동안 너무 많이 접수됐다. “굉음에 창문이 흔들린다” “아이들이 깜짝깜짝 놀란다” “새벽에 잠을 잘 수가 없다”부터 “난청에 시달린다”거나 심지어 “낙태를 했다”는 신고도 있었다. 오토바이족이 즐겨 찾는 서울 광장동 일대와 영등포·마포·송파 등지에서 신고가 많았다.
문제는 수백만∼수천만원의 800㏄ 이상 대형 오토바이를 타는 ‘아저씨 라이더’들이었다. 지속적인 단속에 줄어든 10대 폭주족의 자리를 이들이 채웠다. 국내 오토바이 동호회는 100개에 육박하고 동호회마다 무리지어 오토바이를 타는 ‘투어링(touring)’을 한다. 소음기를 제거한 오토바이 수십대가 굉음을 내고 달리는 투어링은 도시의 골칫거리가 됐다.
이들이 선호하는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데이비슨코리아 관계자는 “원래 순정품은 소음이 작은데 일부 운전자가 임의로 개조해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오토바이 소음은 105㏈을 넘지 못하게 규정돼 있다. 서울경찰청 이서영 교통조사계장은 “불법 개조를 하는 건 굉음이 주는 쾌감과 우월감 때문”이라며 “소리가 크지 않으면 오토바이를 타는 의미가 없다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최근 급성장한 오토바이 동호회에 전문직 종사자 등 부유층이 많이 참여하면서 오토바이도 고급화, 대형화됐다. 2011년 2177대였던 대형 오토바이 수입은 2012년엔 2609대로 늘더니 올 들어 상반기에만 1795대를 기록했다. 현재 국내에서 운행되는 미국산 대형 오토바이만 7000여대로 추산된다.
경찰 단속에 동호회원들은 일단 조심하는 분위기다. 한 동호회 사이트에는 “단속 지역을 도보로 돌아봤다”며 단속이 뜸한 곳을 알려주는 회원들의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경찰은 10월 말까지 단속을 계속할 방침이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