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미야자키 하야오

입력 2013-07-22 18:19

일본 국민들이 가장 많이 본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이 만든 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이다. 관객 동원은 2350만명, 흥행수입 3500억원에 이른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캐릭터 역시 미야자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1988)에 나오는 가상의 동물 토토로다. 일본이 만화를 좋아하고 애니메이션산업이 발전한 나라라는 명성을 떠올리면 놀랄 일은 아니다.

1990년대초 일본대중문화 개방 이후 미야자키의 대표작들을 뒤늦게 접한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에게 그것들은 특히 주제가 만화영화답지 않게 무거워서 일종의 충격이었다. 반핵·반전(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근대화에 대한 성찰(추억은 방울방울·1991), 자본주의의 물신성(物神性)(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자연과 인간의 공존(원령공주·1997) 등은 만화영화의 주제로는 낯설었다. ‘불량’ 아동만화와 달리 부모에게 야단맞지 않고 볼 수 있는 게 만화영화였다. 하지만 당시 볼 수 있었던 만화영화는 동화를 소재로 한 미국 월트 디즈니 작품이나 일본 로봇 영웅물 정도였다.

1941년생인 미야자키 감독은 대학시절 한때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고 반전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모든 사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정령사상, 또는 급진적 생태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인간이 나무와 바람을 동반자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져야 생산력주의에 의한 자연파괴를 멈추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헌법개정 추진을 질타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사죄·배상해야 한다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스튜디오 지브리’의 소책자 ‘열풍’ 최근호의 기고문에서 “선거를 하면 득표율도, 투표율도 낮은데, 정부가 혼잡한 틈을 악용해 즉흥적인 방법으로 헌법을 개정하는 것은 당치않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의 톱(총리)과 정당의 톱(당 대표)들의 역사인식 부재와 정견의 부재에 질렸을 뿐”이라며 “생각이 부족한 인간이 헌법 같은 것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근년의 미야자키 감독은 “아이들은 그냥 재미없는, 시시한 어른이 될 뿐이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희망. 좌절해 가는 희망의 영혼”이라고 말했다. 미야자키 만화영화의 제작과정을 펼쳐 보이는 ‘스튜디오 지브리-레이아웃전’이 지금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