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원-교육청 갈등에 임용고시 파행… 평가원 “출제 손떼겠다” 입장
입력 2013-07-23 05:09
사범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일본어 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A씨(28·여)는 지난 한 달 가까이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방안에 누워만 있다가 요즘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임용시험에 집중하기 위해 올해 초 직장을 그만뒀으나 응시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어 임용시험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올해는 있을 것으로 예상한 것이 착오였다. A씨는 “시험도 한번 제대로 못 보고 ‘패배자’로 자책하며 살까봐 두렵다”고 울먹였다.
22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시·도교육청 임용시험 공동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전체 65개 임용시험 전공과목 중 올해는 30개 과목만 시험을 치른다. 나머지 35개 소수 과목은 기회조차 없다. 일선 학교들이 해당 과목의 교사가 필요하다고 요청해도 임용시험 자체를 치르지 않는다. 실제 일본어의 경우 최소 13개 학교가 교사를 뽑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이처럼 임용시험이 파행 운영되는 이유는 교육청과 평가원의 ‘임용시험 떠넘기기’ 때문이다. 임용시험은 교원 임용권을 가진 교육청이 수능 출제기관인 평가원에 매년 위탁하는 형태로 치러 왔다. 그러나 평가원은 최근 임용시험에서 손을 떼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에 대해 교육청들은 지역별로 따로 뽑을 경우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고 시간과 인력, 비용 측면에서 큰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며 종전대로 평가원이 맡아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평가원이 30개 이하 과목만 출제하기로 잠정 합의가 이뤄졌다.
내년 시험은 더욱 불투명하다. 평가원은 그나마 축소된 위탁 출제마저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올해 도입되는 수준별 수능 등으로 업무가 많아 더 이상 평가원의 출제는 어렵다는 것이다. 평가원 관계자는 “본연의 임무인 정책연구는 소홀히 하고 임용시험처럼 위탁사업에 치중한다는 지적을 총리실로부터 받았다”면서 “갑작스럽게 그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줄곧 문제제기를 해왔는데 교육청이 손놓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임용시험 공동관리위 관계자는 “평가원이 출제 업무를 하지 않겠다면 교육청마다 전담부서를 신설해야 하는데 이는 행정 낭비이자 비효율”이라고 말했다.
기관 간 다툼 속에 학생들의 학습권은 침해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일본어와 같은 소수 과목 교사들을 충원하지 못해 시간강사를 채용하거나 다른 교과목 교사를 단기간 연수시킨 뒤 교단에 올리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덕교과 교사가 복수전공으로 정보컴퓨터와 같은 전문교과나 일본어 같은 제2외국어 과목을 6개월 동안 대학에서 연수받으면 곧바로 해당 교과목을 담당하는 식이다. 현장에서는 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경기도 소재 중학교의 일본어 교사는 “사범대를 나와 해당 과목을 가르치는데 훈련된 사람들은 학교 밖에서 대기하고 학교 내에서는 훈련 안 된 분들이 학생들에게 ‘통째로 외우라’는 식으로 가르친다”고 꼬집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