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귀찬] 듬직한 코끼리 같은 경찰이 돼야

입력 2013-07-22 17:42 수정 2013-07-22 18:50


‘498138’.

스파이들이 사용하는 암호 같지만 경찰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숫자들의 조합이다. 경찰관 1인당 담당인구 498명, 국민 1인당 치안예산 13만8000원이라는 의미로 대한민국 경찰의 사이즈를 나타내는 수치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찰관 1인당 담당인구 300명 선, 국민 1인당 치안예산 35만원’에 비한다면 상당히 왜소한 규모임에 틀림없다.

지금은 박물관에서 박제로나 볼 수 있는 멸종한 도도새. 섬이라는 외부 환경과 단절된 환경에서 천적도 없이 몇 만 년을 지내다보니 날개가 퇴화되어 날아다닐 수 없는 새가 되어버렸다.

16세기 초 포르투갈 선원들이 나타나면서 비행능력을 상실한 도도새는 선원들의 신선한 단백질 공급처가 되었고 그러다가 결국 멸종에 이르고 말았다고 한다.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코끼리. 지금은 그 큰 덩치 때문에 어떤 맹수도 겁내지 않는 생태계의 강자로 군림하지만 몇 만 년 전에는 아주 작은 크기로 맹수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코끼리는 생존을 위해 덩치를 키우는 방법을 선택해 지금처럼 큰 덩치를 가지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이 방법은 기막히게 성공했다. 최강자가 된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여러 가지 프레임을 가지고 이를 통해 주변 환경을 인식한다. 당연히 자신의 프레임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 환경에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만 프레임을 벗어난 환경에는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힘들다.

프레임을 벗어난 환경에 대해 어떤 종(種)은 환경을 자신의 프레임에 맞춰 대처하려 하고 어떤 종은 환경에 맞춰 자신의 프레임을 수정해 대처하려 한다. 도도새는 프레임을 고정시킨 손쉬운 길을 택해 실패했고 코끼리는 자신의 프레임을 수정하는 길을 택해 당장은 어려웠지만 결국 성공했다. 이 차이점은 결국 멸종과 번성이라는 큰 차이를 가져왔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프레임의 틀을 바꿔 적극적인 변화를 수용해 코끼리의 길을 택한 국가는 번성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도도새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찰도 국가 속의 수많은 프레임 중 하나다. 경찰이라는 프레임은 앞에서와 같이 다른 경쟁국들에 비해 왜소한 수준이고 이마저도 2007년 이후 주요 범죄는 18.9%, 112 신고건수는 89%나 증가하는 등 외부 환경은 크게 변화했지만 경찰 인력은 약 6% 증원된 것에 머물고 있어 변화한 환경과 경찰의 프레임 간의 간극은 이제 메우기 힘든 수준까지 왔다.

이제는 경찰도 프레임을 바꿔야 할 때이며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찰의 시각이 아닌 국민의 시각에서 사회현상을 바라보고 치안행정에 외부 참여를 보장하는 치안행정의 개방 등 인식의 프레임을 바꿔나가고 있다.

인식의 프레임은 경찰 스스로 할 수 있고 또 경찰의 몫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프레임 사이즈는 경찰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변화한 환경을 적절히 수용할 수 있는 크기로 프레임을 만들어주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역할이다. 경찰 프레임 확장은 사회안전망의 핵심으로 우리 국민 모두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우선순위에 두고 추진해야 할 선택이 아닌 필수적 요소이다.

오늘도 소망한다. 도도새 같이 국민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경찰이 아니라 듬직한 코끼리 같은 경찰이 되기를.

김귀찬 경북경찰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