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봉남 (8) 아내 20여년 투병… 부부의 쉼없는 기도로 극복

입력 2013-07-22 17:18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화가로 전업할 때 어느 정도 힘들 것이라고 각오는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생활고에다 아내의 병 뒷바라지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내는 40대부터 고혈압과 위장병으로 병원 출입을 하곤 했다. 50대에 들어서는 만성신부전증으로 혈액 투석을 하면서 본격적인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이불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옆에서 곤히 잠들었던 아내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도 혼수상태가 된 아내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일이 생각났다.

아내는 구급차 안에서 심하게 몸부림쳤다. 힘들어하는 아내 곁에서 “하나님, 이 풍랑을 거두어 주세요”라고 지그시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며칠 뒤 고른 숨을 쉬며 편안한 표정이 된 아내와 함께 병원 문을 나섰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 어떤 때는 아내의 몸이 얼음덩어리처럼 차가워졌다. 이러다간 아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연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은혜를 체험했다. 교만해지려는 나를 하나님은 연단을 통해 변화시키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특별히 ‘기독교미술’이란 사명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고난을 주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아내가 아파할 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아팠다. 온 신경이 곤두설 때도 있었다. 아내는 유방암 때문에 절제수술을 받았다. 아내의 계속되는 투병생활에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으려 애썼다. 안정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성경을 읽었다. 그랬더니 마음이 평안해져옴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론 땀으로 흠뻑 젖은 아내를 닦아주면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친척과 교회 식구들은 심방을 왔다. 하지만 심방도 그때뿐이었다. 투병생활이 오래 지속되니 몇 년 뒤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었다. 제대로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학원을 찾아 공부하기도 했다. 특히 노인 환자들과 실습을 하면서 아내를 더욱 편히 돌봐야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정성어린 간호에도 아내는 점점 청각을 잃어갔다. 설상가상 뇌출혈까지 겪었다. 아내의 말이 조금 어눌해졌다.

하지만 아내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인한 신앙심 때문인지 더 이상 병이 악화되지는 않았다. 우리 부부가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돌봐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아내는 1주일에 세 번 혈액 투석을 하고 있지만 비교적 건강하게 잘 지낸다. 아멘, 할렐루야.

아내의 투병생활이 20여년 계속됐다. 고생은 했지만 우리 부부의 믿음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리고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고귀한 선물이란 것도 깨달았다. 고난 중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또 체험했다. 고난이라는 영적 세계에 몰입한 것이 작품의 영감을 얻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특별히 인간에게 심한 고통이 오면 하나님을 찾는 것이 본능이란 것도 알게 됐다.

많은 치료비 때문에 법원에서 파산선고를 받았다. 어려움이 연속적으로 올 때는 광야에 혼자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지 못한 미안한 마음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충동이 잦았다. 하지만 성화 그리는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사명감에 그만두려는 생각을 접을 수 있었다. 고난 가운데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고난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성경 말씀에 기초한 성화를 그리겠다는 꿈을 이뤄나가고 있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