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보냄 받은 자

입력 2013-07-22 17:50 수정 2013-07-22 18:51


“나는 보냄을 받았습니다.”

지난 6월초 미국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의 자택에서 만난 ‘나는 천국을 보았다’(Proof of Heaven)의 저자 이븐 알렉산더 박사에게 들은 가장 강력한 말이었다. 알렉산더 박사는 나와의 인터뷰(본보 6월12일자)에서 4년 전 자신이 회생 확률 0%의 의식불명 상태에 처한 7일 동안 천국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이 땅’으로 귀환한 이후 스스로 질문했다고 한다. “나는 왜 돌아와야만 했을까. 그렇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치의 환경(천국)을 뒤로하고 왜 거칠고 불완전한 ‘이곳’으로 와야만 했는가?” 거기에 대한 스스로의 답이 바로 “나는 보냄을 받았다”는 말이다. 알렉산더 박사는 이렇게 토로했다. “나는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내가 외면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에게로.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내가 본 것을 알려야 했습니다.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제게 없습니다.”

현재 알렉산더 박사는 의사로서의 일도 잠시 접었다. 명문 듀크대 의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15년간 가르쳤던 화려한 경력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궁극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지금 보고 있는 세계보다 무언가가 ‘더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소명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한 사람은 덜 중요한 것(아무리 이 세상에서 중요하게 보이는 것이더라도)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다.

비슷한 말을 영성가인 헨리 나우웬도 했다. 교통사고로 죽음 문턱까지 갔던 그는 수술을 받고 다행히 회복될 수 있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즉각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나우웬은 이렇게 말한다. “마취에서 깨어나 아직도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즉각적으로 내가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사랑에 주리고 목말라 있으면서도 결코 그것을 줄 수 없는 세상에서, 그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모두를 품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하라고 보냄을 받았던 것이다.”

요한복음 1장6절에는 세례 요한의 정체성이 나온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요한은 다름 아닌, 보냄을 받은 자였다. 어찌 보냄을 받은 자가 요한과 이븐 알렉산더, 헨리 나우웬뿐이겠는가. 우리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우린 어떤 목적을 위해서 보냄 받은 사람, 그래서 ‘부름 받아 나선 이 몸’들이다. 제한된 이 땅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보냄 받은 그 목적대로 나는 지금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한국교회의 갱신과 부흥이라는 거창한 주제도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교회를 넘어 이 세상 모든 영역 속에서 보내심을 받은 목적대로 사는 것, 그것이 부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알렉산더 박사를 만났을 즈음, 터키의 한 선교사가 이메일로 ‘저 장미꽃 위에 이슬’로 시작되는 찬송가의 3절을 보내주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님은 “세상으로 가라”고 명하셨다. 변화산에 머물고 싶은 욕망을 접고, 거친 세상에 나가 그 땅을 변혁시키는 것, 그것이 ‘보내심을 받은’ 우리의 소명이다.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