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乙을 넘어 상생으로] 함께 가야 건강한 산업 생태계 만든다
입력 2013-07-22 17:31
‘갑(甲)’과 ‘을(乙)’은 애초에 계약서 등에 등장하는 법률 용어다. 특정한 순서나 지위고하를 구분하지 않고 순서대로 당사자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위가 높거나 우위를 점한 쪽을 ‘갑’, 그렇지 못한 쪽을 ‘을’이라 부르고 있다. 갑을관계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프랜차이즈업체와 대리점주, 업주와 종업원 관계까지 폭넓게 쓰이고 있다.
‘갑을 문화’는 압축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뿌리 깊어졌다. 대기업은 관청에 청탁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납품에 매달리는 구조가 정착됐다.
지난 정부 때부터 속도가 붙은 동반성장은 사실상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사이에 가로 놓인 ‘갑을문화’를 없애자는 것과 다름없다. 기업들도 동반성장에 차츰 눈을 뜨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이 취약한 ‘산업 생태계’에서 대기업의 건강한 경영, 지속가능한 경영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가 지난해 10월 2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동반성장을 전사적으로 추진하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 동반성장 추진실적을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 인사평가에 반영하는 기업이 조사대상 기업의 79.1%에 이르렀다. 2010년 20.0%에서 불과 2년 만에 59.1% 포인트나 뛰었다. 동반성장 전담조직을 설치한 기업도 87.8%로 2010년 42.6%보다 배 이상 늘었다.
중소기업협력센터는 “대기업에서 동반성장을 기업경영의 필수요소로 인식하고 있다”며 “CEO 주도로 동반성장을 전사적으로 강하게 추진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근 대기업의 동반성장은 납품대금 조기지급이나 공정한 하도급계약 체결에서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 연구개발을 도와주는가 하면, 금융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장비·부품 국산화는 물론 사업·마케팅에까지 협력업체의 장기적 경쟁력 확보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 생산설비를 평가하기 어려운 협력 중소기업을 위해 원료 구매, 제조 환경, 최종제품까지 생산·품질관리 컨설팅을 해주기도 한다.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위해 해외 판매처를 연결해주는 대기업도 등장했다.
전경련은 중소기업의 창조경영을 도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 나섰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지난 18일 경영자문단 9주년 기념식 개회사에서 “국내산업의 근간이 되는 중소기업이 창조경영으로 대기업과 함께 신성장동력 창출에 적극 나서야만 우리나라가 저성장 기조를 극복하고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경련 경영자문단은 기술개발과 해외업무 경험이 풍부한 대기업 임원출신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조직이다. 올해 벤처·창업기업과 기술혁신형 강소기업 육성프로그램 등 중장기 자문을 지난해 보다 70% 가량 늘려 중소기업의 창조경영 지원에 주력할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는 “동반성장이 상생경영에서 차츰 불합리한 갑을관계 타파 등 윤리경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