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맺은 60학번 제자 스승의 큰 뜻을 받들어… 서강대 초대 총장 존 데일리 신부 흉상 제막
입력 2013-07-21 19:10
“한국은 언제나 나의 두 번째 고향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서강대를 위해 평생을 바친 고(故) 존 데일리 신부의 흉상 제막식이 19일 서강대 로욜라동산에서 열렸다. 20일은 1년6개월 전 선종한 데일리 신부의 90세 생일이다.
제막식에 참석한 동문 100여명 중 데일리 신부와 각별한 우정을 쌓은 박정철(73·사학과 60학번)씨가 있었다. 데일리 신부 흉상 건립 및 장학금 모금 추진위원장인 박씨는 “50여년간 이어진 신부님과의 인연으로 내 삶이 달라졌다”며 “학교에 모셨으니 외롭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또 “데일리 신부는 흉상보다 본인 이름의 장학금에 더 기뻐하실 것”이라고 전했다. 당초 위원회는 동상을 제작하려다 소박했던 데일리 신부의 뜻을 기리기 위해 흉상을 만들고 나머지 기금 2억원은 국제교류장학금으로 쓰기로 했다.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태어난 데일리 신부는 1961년 가톨릭 예수회가 세운 서강대에 영문과 교수로 부임했다. 63년 2대 학장을 지냈고 70년 종합대로 승격되며 초대 총장을 맡았다. 박씨는 “흔들리던 학창시절 다독여주시고 평생 동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회고했다. 학생들은 그를 ‘파더(father)’라 부르며 따랐다. 교수 한 명당 학생이 4명 정도여서 교수들이 학생들의 가정사까지 알던 때였다.
그 시절 서강대 학사관리는 지금보다 훨씬 혹독했다. 첫 수업은 반드시 영어로 진행됐고 전교생 성적표가 매주 복도에 붙었다. 성적에 따라 소속 반도 바뀌었다. 60학번으로 165명이 입학했지만 50명만 졸업장을 받았다.
영문과로 입학해 수업을 따라가기 벅찼던 박씨는 1년을 견디다 학교를 그만두고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홍콩으로 향했다. 그런데 몇 달 후 데일리 신부가 박씨를 찾아왔다. 그는 “허송세월하지 말라”고 박씨를 타일러 학교로 데려갔고 사학과로 옮기겠다는 박씨의 전과 수속도 도왔다. 박씨는 이후에도 틈틈이 데일리 신부를 찾아 고민을 상담했다.
82년 데일리 신부가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인연은 이어졌다. 박씨는 “필요한 데 쓰시라고 드리는 현금을 그대로 예수회로 보내셔서 나중에는 물품을 직접 사다드렸다”며 “신부님의 검소함은 두고두고 모범이 됐다”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