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흑인소년 마틴, 35년전 나 일수도”

입력 2013-07-21 19:06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스패닉계 백인 자경단원에게 피살된 17세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에게 인종적 유대감을 드러냈다. 비무장 상태인 마틴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조지 짐머만이 법원에서 무죄 평결을 받은 것과 관련해 흑인 대통령으로서 첫 입장을 밝힌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들 아시다시피 마틴이 처음 총에 맞았을 때 나는 그가 내 아들일 수도 있다고 말했었다”며 “표현을 달리 하자면 그는 35년 전 나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나라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중 백화점 쇼핑에서 뒤쫓기는 경험을 안 해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나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2월 사탕과 음료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던 마틴은 자신을 마약 범죄자로 의심하고 쫓아온 짐머만과 몸싸움을 벌이다 총격을 받고 숨졌다. 마틴에겐 무기나 전과가 없었지만 짐머만은 법원에서 정당방위로 풀려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만일 백인 소년이 마틴과 똑같은 일을 겪었다면 평결이나 여파가 전혀 달랐을 것”이라며 플로리다주의 정당방위법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발언으로 지난 주말 미국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는 더욱 달아올랐다. 20일 뉴욕 워싱턴DC 마이애미 로스앤젤레스(LA) 보스턴 등 주요 도시에서는 짐머만 무죄 평결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USA투데이 등이 보도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마틴을 추모하면서 짐머만 기소와 정당방위법 개정을 촉구했다. 흑인 가수 제이지와 비욘세 부부도 참여했다. LA 연방법원 청사 앞에서는 500여명이 ‘정의도, 평화도 없다’, ‘흑인 사냥철?’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평결에 항의했다.

마틴의 어머니 샤브리나 풀턴은 시위에서 “오늘은 내 아들의 일이었지만 내일은 여러분의 자녀가 이런 일을 당할 수도 있다”고 호소했다. 마이애미 시위에 참여한 마틴의 아버지 트레이시 마틴은 “재판을 받은 건 짐머만이 아니라 내 아들이란 사실을 깨달았다”며 “죽기 전까지 아들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