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최저임금 10% 껑충, 영세업체들 못 견디고 짐 싸… 차이나 엑소더스 현실화

입력 2013-07-22 05:01


1990년대 초반 한국을 떠나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에 자리 잡은 한 중소 섬유업체는 최근 중국인이 대표로 있는 북한 평양의 한 생산공장과 공급 계약을 했다. 계약 물량은 중국 내 공장의 1개 라인 생산 규모다. 얼어붙은 남·북관계에도 불구하고 이 업체가 북한에 우회 진출한 것은 나날이 치솟는 중국의 인건비 때문이다. 또 다른 소규모 제조업체 역시 북한인을 대규모로 채용 중인 중국 공장과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에 취업하기 위해 나온 북한인은 중국 현지인보다 임금이 저렴해 생산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다.

이처럼 중국에 진출한 국내 중소기업이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으로까지 우회 진출하는 것은 중국의 기업 경영 사정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 가운데는 낮은 임금에 매력을 느낀 노동집약적인 영세 기업이 많았다. 특히 랴오닝성은 우리나라와 가깝고 조선족이 많아 중국 진출 초기에 이주가 많았던 지역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하면서 임금이 치솟고 외국 기업의 경영환경이 악화돼 ‘차이나 엑소더스(중국 대탈출)’가 이어지고 있다.

◇급변하는 중국 투자환경=중국한국상회 관계자는 21일 “최근 중국 내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중국을 떠나는 기업이 늘고 있다”면서 “생산라인을 통째로 동남아시아 국가로 옮기거나 일부를 떼어내 북한 등 저임금 지역으로 이전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의 월 최저임금은 지난 1월 1260위안(23만원)에서 1400위안으로 11.1% 상승하는 등 지역별로 최저임금이 10% 안팎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또 2009년 신기업소득세법이 시행되면서 중국 기업(33%)에 비해 낮은 기업소득세율(15∼24%)을 적용받던 외국 기업에 대한 특혜를 없애고 모두 25%로 통일했다. 중국 정부가 과거 무분별하게 받던 외국인 투자를 ‘질적 성장’ 위주로 재편하면서 감독·투자 승인 규정 등의 우대 조치도 모두 폐지했다. 사회보험법이 2011년 시행되는 등 노동자 권익보호 의식 역시 급격히 상승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진출은 여전히 증가세인 반면 낮은 인건비 등을 기대하고 중국에 이전했던 중소·중견기업들이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됐다.

실제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중국 투자는 2007년 53억3011만 달러를 기록하며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33억680만 달러로 내려앉았다. 신규 법인 설립 수 역시 2006년 2298개에서 지난해 710개로 감소했다. 이미 차이나 엑소더스가 시작되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 진출 기업들 ‘어찌하리오’=영세 가공업체 등 초기 중국 진출 기업들은 요즘 망연자실하고 있다. 동남아 지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자니 이미 포화상태인 데다 임금도 만만치 않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방글라데시가 2010년 말 최저임금을 77.7%나 올리는 등 동남아 국가 대부분이 최저임금을 일제히 인상했다. 말레이시아나 필리핀, 태국 등은 월 최저임금이 200달러 이상으로 중국과 비슷하다.

중국 내륙 지역으로 이동한다 해도 1∼2년 겨우 연명할 수 있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중국에 진출한 한 기업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한·중 FTA 타결 이후 중국 내수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라며 “북한 진출 역시 당장 버티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는 것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싼 북한에 진출해도 사회 여건상 원자재 손실을 보거나 납기를 못 맞추는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부에서 우리나라로 수출되는 상품을 만드는 것에 대한 반감도 상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전북 익산에 보석가공 업체들이 집단 유턴한 것을 계기로 국내로 돌아올 것을 고민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한·미, 한·유럽연합(EU) FTA 시행 이후 일부 수출 기업의 경우 관세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지원이 확정되지 않았고 섣불리 유턴했다가 고임금 때문에 경영이 더욱 악화될 수 있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박한진 코트라 중국사업단장은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했던 지난 30년을 통째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가 중국의 신도시화 정책과 7대 신흥전략사업 등의 귀추를 잘 살펴 중국 내 우리 기업에 대한 총체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