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재연된 원격 진료 허용 논란
입력 2013-07-21 17:52
정부가 ‘원격 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미래 먹거리 산업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을 것을 주문하자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각 부처에서 유헬스(U-health)를 거론하며 원격 진료가 허용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원격 진료 도입으로 국내 산업이 활성화될 경우 우리나라 유헬스 시장 규모가 2014년 3조원, 일자리 창출은 3만9000여명에 달할 것이란 게 이들 부처와 관련 산업계의 설명이다.
보건복지부도 지난달 산간·도서·벽지의 의사-환자, 의사-간호사 간 원격 진료부터 허용한 뒤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와 시민단체 등은 ‘제한적 원격 진료’도 반대하고 나서는 등 이를 둘러싸고 지난 10여간 진행돼 온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원격 의료(telemedicine)는 인터넷이나 화상통신 등을 이용해 원격지의 환자를 진단·치료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즉 원격 진단과 수술, 진료, 유헬스 등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반면 원격 진료는 의사가 환자와 직접 얼굴을 맞대는 소위 ‘대면 진료’를 원격 통신기술을 활용해 대신하는 협의의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 국내 의료법은 의사-의사 간 원격 진료는 허용하고 있지만 의사-환자 간 직접적인 원격 진료는 못하게 하고 있다. 복지부는 1989년부터 강원도 횡성군 등 일부 지역에서 원격 의료 시범사업을 수년째 벌여오고 있는데, 이는 환자가 자신의 집이 아니라 보건진료소 등 의료인(간호사 포함)이 근무하는 곳으로 나와 도움을 받아야 가능한 간접 원격 진료 형태다. 복지부는 지난 18대 국회에서 의료 취약지역 거주자에 한해 의사-환자 간 원격 진료를 허용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국회 반대로 유야무야됐다. 정부와 산업계는 이번에 ‘의사-환자’ 간 직접 원격 진료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재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산업계 판단대로 원격 진료를 포함한 유헬스 산업이 창조경제 구현과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돌파구임은 틀림없다. 그렇다고 국민 건강·생명과 직결되는 사안을 산업적 효용가치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고 본다. 원격 진료는 의료사고, 환자 정보 유출 등 다양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의료인의 오감을 동원해 이뤄져야 할 의료 서비스가 단지 디스플레이 화면과 전자적 음성을 재생한 소리를 통해 이뤄짐으로써 오진 등 의료사고 발생 가능성이 대면 진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원격 진료로 인한 정보 유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원격 진료가 시행되면 의사뿐 아니라 의공학자, 컴퓨터 전문가, 통계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관여하게 된다. 때문에 환자 정보가 유출될 경우 유출 경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IT산업 발전 속도를 보면 어떤 형태로든 원격 진료가 시행될 여지는 크다. 하지만 원격 진료를 위해서는 인터넷 기술이나 통신장비의 질, 네트워크 수준이 좀더 업그레이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원격 진료의 주 고객층인 산간·벽지 환자 등 의료 소외계층이 인터넷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정부가 창조경제의 성과에 급급해 원격 진료를 서둘러 추진하다간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의사-환자 간 직접 원격 진료는 간접 원격 진료를 시행하면서 의료계 전반의 경험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태원 정책기획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