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무엇이 성공인가
입력 2013-07-21 17:04
우리 교회에는 일등 권사님들이 계신다. 말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며 기도하시는 분들이다. 그런데 최근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일등 권사님들 중에서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부끄러워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경제적으로 넉넉한 복을 받지 못했고, 자녀들의 진로가 잘 풀리지 않으며, 혹은 병마의 고난이 있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진심으로 존경했고 그들은 나의 자랑이었는데, 스스로 자신 없어 하신다는 소식에 의아스러웠고 한편으로 속상했다.
내 마음속에 진지하게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성공이란 무엇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성도의 기준이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출전을 앞두고 시간이 다급한 사울 왕이 선지자 사무엘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그만 자신이 직접 제사를 집행하고야 만다. 뒤늦게 도착한 사무엘은 사울을 향하여 무섭게 저주를 한다. 그리고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는 결정적인 선언까지 한다. 어찌 보면 이해가 안 간다. 사울도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또 늦은 것은 사울이 아니라 사무엘이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도 느긋한 상황이 아니라 목숨이 오가는 다급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상참작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사무엘은 소통이 안 되는 ‘불통(不通)’의 사람인가?
문제는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사울의 근본 가치관, 즉 ‘성공의 기준’의 문제였다. 사울은 왕이요 왕은 하나님의 종인데,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께서 시키는 것을 순종하는 것이 첫째 임무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울로 하여금 출전의 기회를 주지 않고, 급기야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했다면, 사울은 그렇게 했어야 한다. 그것이 그의 성공이었다. 사울은 무조건 전쟁을 이기는 것을 성공이라고 여겼지만 하나님은 달랐다. 왕이신 주의 말씀을 듣는 것, 그것을 진정한 성공으로 보셨다. ‘성공 기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보며 후회하신 것은 단지 그의 부족한 인내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전혀 다른 가치관과 기준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안 주시면 안 가지는 것이 성공이다. 어릴 때 들은 동화가 있다. 마을 원님이 썩은 씨를 나눠준 뒤 키우라고 명령했다. 합격한 사람은 딱 한 사람, 썩은 씨를 그대로 가져온 사람이다. 이게 성공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준 반지, 그것 외에 무수한 반지를 손에 낀 여인이 있다면, 그는 부정한 간부(姦婦)다. 고난의 시간에는 고생하는 것이 성공이다. 고난의 핏 잔을 마신 예수님을 과연 누가 실패자라고 말하는가? 안중근 의사의 노모가 감옥의 아들에게 전한 말이 있다. ‘너는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너는 항소하지 마라.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르렀으니 딴 맘먹지 말고 죽어라.’ 아들이 살아남는 것이 성공이 아니었다. 많이 가지고 높은 자리에 가는 것이 반드시 성공이 아닐 수 있다. 신실한 권사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권사님, 권사님은 성공하셨어요! 부끄러워 마세요!”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