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벼랑 끝 인생에게 새 희망을
입력 2013-07-21 16:57
이사야 43장 19∼20절
성경에는 이주민들을 통해 복음의 역사를 강하게 나타낸 기록이 많습니다. 성경은 곧 다문화 복음이자 이주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복음은 늘 이방인과 함께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과 늘 함께하셨고 이방인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셨습니다. 예수의 족보에 4명의 여인이 나오는데, 그중에 한 명이 룻입니다. 이 여인은 두 번이나 국제결혼을 한 다윗의 증조할머니입니다. 예수님께로 이어지는 족보가 국제결혼과 이방인 룻을 통해 이뤄진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 때에는 홀로 사는 과부가 많았습니다. 당시 3년반 동안 극심한 기근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느 과부도 아닌, 이방 땅 시돈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엘리야가 찾아가도록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성격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4복음서 중 유대인에게 쓴 것은 마태복음뿐입니다. 나머지 3복음서와 신약성서 대부분이 이방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위해 기록된 말씀입니다. 신약 시대에 사도행전을 비롯해 대부분 복음은 이방 땅 사람을 향한 다문화 복음의 말씀으로 보면 틀림없습니다. 이렇듯 다문화 복음, 이주민을 위한 복음은 강력합니다.
한국에서 제2의 고향인 이주민들이 배척당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예수님께서 배척당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당하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쫓아내려고 벼랑 끝으로 끌고 가기도 했습니다(눅 4:24∼27).
나사렛에서 예수님을 쫓아내듯 이방인을 차별하고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부끄러운 상황들이 아직도 한국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국제결혼을 한 이주 여성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이 잘려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인 남편이 도박으로 그 돈을 탕진한 데 이어 도박 빚 6000만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절망의 벼랑 끝에서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이라 했습니다(사 43:19). 이 말씀은 광야처럼 거친 차별의 한국 땅에서 들짐승 같은 취급을 당해도 ‘하나님은 한국 교회가 알지 못하는 새 길을 연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벼랑 끝으로 끌고 가는 것은 ‘반(反)복음’ 행위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과 같다”(마 25:45)고 했습니다.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고향이 된 한국에서 이주민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도 선택하셨습니다.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 43:20) 150만명이 거주하는 한국의 다문화 사회 이주민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이주민들도 ‘택함 받은 백성’이 되게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광야와 같은 다문화 사회에서 길을 내고 사막에 물을 내는 일이 곧 교회의 사명입니다. 바로 이러한 수고가 벼랑 끝에 선 이주민에게 새 희망을 주는 등대가 될 것입니다.
박천응 목사 (국경없는 마을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