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승훈] 조선왕조실록
입력 2013-07-21 17:26
국보 151호인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귀한 유산이다. 같은 유교문화권이었던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실록을 편찬했지만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왕별로 기록한 방대한 양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내용 면에서 조선왕조실록과 비교가 될 만한 것은 없다.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실록의 가치를 드높여주는 것은 높은 신뢰성이다. 편찬 과정에서 편집의 독립성과 기록에 관한 비밀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실록 편찬 시 가장 중요한 자료로 이용됐던 사초(史草)는 높은 직위라고 하기 어려운 예문관의 정7품∼정9품 관원에 의해 작성됐지만 이들은 궁중에서 보고 들은 임금의 언행과 국사 논의 과정은 물론 주요 관리에 대한 인물평(賢否)까지 기록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초는 사관 외에는 볼 수 없었고 무한권력을 지녔던 왕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숱한 국왕들, 심지어 성군으로 익히 알려진 세종조차 실록을 열람하고자 했으나 사관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울러 사초를 볼 수 있었던 사관이 만약 내용을 누설할 경우엔 중죄로 처벌하도록 했다.
연산군이 무오사화 때 사초 일부를 봤지만 이 외에 사초의 내용이 알려져 문제가 빚어진 일은 거의 없었다. 이 같은 제도적 장치와 그 제도를 목숨을 걸고 지켜냈던 사관들 덕에 조선왕조실록은 그 가치가 빛날 수 있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둘러싼 논란이 길어지고 있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발언이니 조선시대로 따지면 대화록 한 줄 한 줄이 사초인 셈이다. 정치권이 이전투구를 벌이다 보니 사초는 어느새 저잣거리의 술안주가 된 지 오래인데, 이제는 원본의 존재를 놓고 난장을 치고 있다.
일각에서 이번 논란을 계기로 대통령기록물 관리 기관을 아예 정치적으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가기록원과 그 하부 조직인 대통령기록관의 성격 자체가 애매한 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을 둘러싼 논란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소속 기관이 전임 대통령의 기록물을 자신의 명예를 위한다는 이유로 공개하는 게 작금의 상황인 만큼 고민해볼 만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어찌됐건 숱한 군왕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사초를 지켜냈던 조선시대 사관들이 볼 때 2013년 대한민국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