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전문인력이 경쟁력이다” 그로브 사원 복지제도
입력 2013-07-21 17:32
현대·기아차에 공작기계를 납품하는 독일 그로브사, 우리 기업들에도 잘 알려진 글로벌 중견기업이다. 지난 5월 독일 남부의 소도시 민델하임에 자리 잡은 그로브사를 방문한 국내 중소기업 연수단은 이 회사의 사원 복지제도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연수단을 처음 놀라게 한 것은 직원식당. 공장 견학에 이어 직원 식당에 들어서자 뷔페를 연상케 한 다양한 메뉴가 연수단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날 메인 요리는 목살스테이크, 해물파스타, 햄버그스테이크 등 3가지. 대형 샐러드바에는 각종 감자요리와 싱싱한 야채, 과일이 준비돼 있었고 그 옆으로 탄산음료와 주스 등을 뽑아먹을 수 있는 디스펜서와 각종 병 음료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식당 이용 요금은 3유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5000원이 채 안됐다.
◇사원 복지가 회사 경쟁력을 키운다=그로브사 관계자는 “음식값은 회사 지원으로 시중 가격의 절반도 안 된다”며 “하지만 수시로 영양사 교육을 시키고, 재료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재고를 남기지 않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설명한다.
식당을 이용해본 국내 중소기업 ‘컴윈스’의 김태용 부사장은 “방문했던 히든챔피언들의 공통점은 직원들이 만족할 만한 식사를 제공하는 시설을 잘 갖췄다는 점”이라며 “그로브사의 식당 규모와 운영 방식이 놀랍기도 하지만 식당을 이용하는 근로자들의 밝은 표정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연수단이 부러움을 산 것은 식당뿐만이 아니었다. 그로브 민델하임 본사와 공장에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병원이 두 곳이나 있다.
클라우스 루돌프 부사장은 “40년 전부터 직원들을 위해 무료로 병원을 운영을 하고 있다”며 “창업자와 경영진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직원 임금은 산별노조 기준에 따르기 때문에 비슷하지만 상여금 등을 통해 조금 더 높은 수준을 유지해 직원들이 자부심을 느끼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원 복지를 확대하려는 노력에는 최고 수준의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경영진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루돌프 부사장은 설명했다. 기술 경쟁력은 숙련인력 확보에 달려 있으며, 숙련인력을 잡아두기 위해서는 최고의 근로여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일 히든챔피언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실적이 악화된 시기에도 근로시간 계정제·단축제 등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이는 나중에 경기회복을 대비한 숙련인력 확보 노력과 맞닿아 있다. 40여년간 1900명의 견습생을 배출하는 등 지역사회 일자리를 책임질 뿐 아니라 유능한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가족친화적 근무환경 조성=실제로 최근 몇 년간 지멘스나 폭스바겐 등 독일 대기업의 매출이 대폭 증가하면서 협력사들의 숙련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독일 상공회의소(DIHK)에 따르면 중소기업 70%가 인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저출산 현상으로 전문인력 공급이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자 기업들도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로브사처럼 사원 복지 혜택을 강화하는가 하면, 트룸프사처럼 가족친화적인 근무환경 조성에 앞장서는 기업들도 있다.
숙련인력 확보를 위한 그로브사의 노력은 금융위기를 극복한 뒤 빛을 발했다. 루돌프 부사장은 “인력 구조조정 없이 금융위기를 넘기고 미뤘던 투자계획을 집행하면서 2009년 5억3000만 유로였던 매출이 지난해 10억 유로로 3년 만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올해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로브사는 이직률이 2%도 안 될 정도로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 40여년간 그로브사에서 직업 교육을 받은 견습생은 1900명 정도이며, 이 중 1000명가량이 지금도 회사에 남아 일하고 있다.
낮은 이직률로 탄탄한 기술력이 전수되는 전통이 회사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그로브사는 또 수요자 요구에 부합하는 제품 공급을 위해 본사와 해외 생산기지의 역할분담 체제를 일찌감치 마련했다.
민델하임 본사 직원 2900여명 중 400여명이 연구·개발(R&D) 인력일 정도로 신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해외 생산기지에서는 해당 지역 수요자의 요구에 맞게 설비·설계 계획을 수립하고 제품을 조립하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루돌프 부사장은 그로브사가 히든챔피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로 가족기업이 가진 장기계획에 따른 투자, 아이디어 중시 경영 등을 꼽았다. 그는 또 “오랜 기간 회사 상황이 어려울 때 사장까지 직접 나서 고객에게 회사 사정을 직접 설명하고 약속을 지키며 쌓은 신뢰가 회사의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민델하임=글·사진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