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간호 시스템’ 시범사업] 간호사가 환자 수발… 간병비 걱정 마세요
입력 2013-07-20 04:03
가족 중 한 사람이 병원에 입원하면 온 집안에 비상이 걸린다. 게다가 수술이라도 할라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환자 곁에서 수발을 들어야 한다. 키 낮은 보호자용 침대에 몸을 의탁해 새우잠으로 밤을 지새우는 건 다반사. 그렇다고 사설 간병인을 쓰기엔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한달 간병비만 180만∼200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이런 가족들의 간병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 15일부터(일부 병원은 1일부터) 간호사 중심으로 간병이 이뤄지는 ‘포괄간호 시스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가족이나 간병인이 아니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전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새로운 형태의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이다. 정부는 최대 1년6개월간 시범 사업과 정책 연구를 거쳐 이르면 2015년쯤부터 이를 제도화해 이른바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중 간병비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키를 잡고 있다. 하지만 간호인력 충원과 예산 확보 등 걸림돌이 적지 않아 본격 도입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 11일 찾은 서울 목동힘찬병원 7층의 한 병실. 낮 12시쯤 강가영·박루비 간호사가 점심 식사판을 들고 들어서자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던 정대선(59·여·경기도 광명시)씨와 이구옥(73·경기도 남양주시) 할머니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틀 전 똑같이 오른쪽 무릎에 인공관절수술을 받아 거동을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 8일 ‘보호자 없는 병실’에 들어온 후 간호사로부터 투약·검사·처치 등은 물론 식사와 양치질, 세면, 찜질, 목욕, 욕창관리, 배설 등 여러 수발 서비스까지 받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 할머니는 “가족이 곁에 있을 수 없다고 해서 괜히 불안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이 닦아 주고 오줌도 받아내 주고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써 줘 고맙다”며 웃었다. 정씨도 “아들과 남편은 직장 다니느라 잠깐 왔다가는 정도고 간병인은 너무 비싸 쓸 형편이 안된다. 대신 간호사들이 모든 걸 챙겨주니 아주 좋다”며 맞장구를 쳤다.
관절 전문인 목동힘찬병원은 전체 166병상 중 3분의 2 정도(109병상)를 ‘보호자 없는 병실’로 할애하고 있다. 구미성 간호부장은 “관절 환자들이 많다 보니 간병인이나 보호자 의존율이 높은 편이다. 게다가 대부분 다른 질병을 함께 갖고 있는 노인들이라 간호·간병 요구도가 높다”면서 “보호자가 필요 없는 병실을 운영한다는 소식에 입원 희망자들의 문의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간병이 시간적,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었던 가족들의 만족도 또한 높다. 지난 17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11층에서 만난 폐암 말기의 이남철(67·경기도 고양시) 할아버지는 옆에서 누군가가 거들어주지 않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지난해 8월 진단 이후 28차례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입·퇴원을 반복해 왔다. 한번 입원하면 할아버지의 식사와 세면, 기저귀 갈기 같은 수발은 아내 김금례(70) 할머니의 몫이었다. 밤낮없이 간병에 매달리다 보니 고질병이었던 무릎 관절염이 도졌다고 한다. 하지만 보호자 없는 병실을 이용한 뒤부터는 집에 가서 잠자고 볼일도 보며 병원에는 가끔 들르고 있다. 김 할머니는 “손녀 같은 간호사가 밥을 떠 먹여주니 할아버지가 처음엔 어색해서 입에 밥을 머금고는 넘기지 않더니 며칠 지나니까 잘 드신다”며 흐뭇해했다.
정유진(23) 간호사는 “환자 상황을 잘 아는 간호사가 돌봐주니 가족들도 안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산병원은 전체 746개 병상 중 정형외과와 외과, 혈액종양내과, 소화기내과 등 4개 병동 170병상을 보호자 없는 병실로 운영키로 했다.
간호사 간병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에는 인하대병원 등 전국 13개 의료기관이 선정됐다. 입원 대상은 재원 일수 14일 이내 급성기 환자로 의사의 판단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신건강의학과나 재활환자, 소아·산모, 치매·섬망, 감염성 질환자는 제외된다.
보호자 없는 병실에는 가족이나 간병인을 둘 수 없다. 면회도 허가된 시간 외에는 엄격히 제한되고 가족이 병원에서 잘 수도 없다. 의료기관에는 올해 말까지 1차 시범사업을 위해 간호인력 확충, 시설 개선비 등 명목으로 130억원의 정부·지방자치단체 돈이 지원된다. 따라서 간호사 간병에 드는 비용을 환자가 추가로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의료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간병비 부담이 줄어드는 등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관건은 양질의 간호인력 충원이 제대로 이뤄질지 여부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등 3곳은 당초 계획했던 간호인력 확보에 별 무리가 없어 지난 1일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인하대병원 등 8곳은 지난 15일에야 일부 병상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청주의료원과 안동의료원 등 2곳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충원에 애를 먹으면서 이달 중 정상 가동이 불가능하게 됐다. 특히 이들 공공병원은 당초 계획했던 병상 수를 축소하는 등 파행 운영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42개 병상을 보호자 없는 병실로 운영하려 했던 청주의료원은 지난달과 이달 초 두 차례에 걸쳐 15명의 간호인력 충원 공고를 냈지만 겨우 간호조무사 1명을 채용하는 데 그쳤다.
청주의료원 관계자는 “간호사들이 3교대 근무 등 열악한 여건 때문에 병원 근무를 꺼리고 그마나 서울, 수도권 병원을 선호하다 보니 지방 병원은 간호사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라면서 “현재로선 8월 중순 이후에나 운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간호인력 확보에 실패하면 불가피하게 병상 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동의료원은 당초 2개 병동(112병상)을 운영키로 했지만 최근 병상 수를 절반으로 줄여 달라고 복지부에 요청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민간 병원과 달리 2개 공공의료원은 시범사업 예산 등을 감안해 6개월 한시적 채용을 조건으로 내걸어 채용에 애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달 말 해당 의료원을 방문해 내년까지 시범사업 연장에 따른 추가 예산 확보 계획 등을 알려주고 채용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복지부 관계자는 “간호대학 졸업생이 내년부터 늘고, 시간제 정규직이나 야간 전담 간호사 등을 신설하는 등 근무 여건을 개선해 미활동 간호사를 끌어낼 방침도 세워두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환자의 안전을 위한 전동침대나 안전 바, 콜벨(call bell) 설치 등 병원 시설 개선에 지원되는 예산도 올해(병상당 100만원)보다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복지부는 내년 시범사업 연장을 위해 200억원의 예산을 신청해 놓은 상태지만 기획재정부 심사 과정에서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복지부는 시범사업과 병행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내년 7월까지 제도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간병 추가 비용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환자 부담을 낮추고 새 서비스가 추가되는 만큼 건강보험료를 올리는 방안 등이 검토된다. 또 3대 비급여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 기구인 국민행복의료기획단을 통해 간병 부담 해소를 위한 간호사 간병 서비스 도입과 개선 방안에 대한 공론화 작업도 함께 벌여나갈 계획이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