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휴가의 궤도
입력 2013-07-19 18:14
우리나라 고전의 상당 부분은 남도의 오지나 섬마다 촘촘히 박혀 있는 유배지에서 탄생한 작품들이다.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은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형 정약전과 편지를 주고받곤 했다.
그런데 1811년 어느 날 밤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혜성을 본 정약전이 다산에게 편지로 그 정체를 물어왔다. 그에 대해 다산은 혜성은 불이 아니라 얼음이라고 답했다. 이는 프레드 휘플이라는 미국의 천문학자가 195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혜성의 정체가 돌이 섞인 얼음덩어리라는 가설을 제시한 것보다 무려 140년이나 앞선 혜안이었다. 아마 유배지라는 독특한 환경이 그 같은 통찰력을 제공한 것은 아니었을까.
옛 사람들이 혜성에 대해 궁금해한 것은 혜성의 불규칙적인 궤도와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혜성은 가장 가까운 궤도가 태양에 지나치게 치우친 긴 타원 궤도를 갖는다. 공전 주기도 매우 다양해서 어떤 혜성은 20년 미만인 반면 수백만년의 주기를 갖는 것도 있고 한 번 태양 곁을 지나면 영원히 태양계로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있다.
때문에 옛 사람들에게 갑자기 밤하늘에 긴 꼬리를 그으며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혜성은 불길함의 징조로 여겨졌다. 불규칙한 궤도로 인해 많은 혜성들이 다른 천체와 충돌해 엄청난 파괴를 일으키니 그 같은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닌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혜성의 충돌이 행성에 물을 공급하거나 중대한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을 일으키는 등 새로운 창조의 원인이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비해 태양 주위를 원형 궤도로 돌던 원시 행성들은 초기의 충돌에서 살아남아 이제는 중년의 안정기에 들어섰다. 즉 행성은 그 규칙적인 궤도 덕분에 몸집을 불리고 안정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인의 삶을 행성과 혜성에 비교해 보자. 아침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서 저녁이면 똑같은 길로 퇴근하는 현대인의 일상은 행성의 궤도와 다를 게 없다. 이 같은 규칙성으로 인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이 규칙성에서 벗어나는 여행이라는 불규칙한 궤도는 우리 삶에 새로운 변화와 감동을 주는 활력소가 된다. 중앙의 관직이라는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난 유배지에서의 생활이 그처럼 많은 고전 작품들을 탄생시킨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올 여름 휴가는 정해진 궤도 없이 남도의 유배지처럼, 혜성처럼 떠나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