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화 칼럼] 영적 마라톤을 시작할 때입니다
입력 2013-07-19 17:27
마라톤은 올림픽의 꽃이다. 마라톤 경기가 올림픽 경기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에티오피아는 1960년 전혀 알려진 바 없던 아베베 비킬라 선수가 맨발로 마라톤 경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메달국이 됨은 물론 아베베 본인은 아프리카 맨발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그 훨씬 이전인 36년 일제 강점기 베를린 올림픽에서 비록 일장기를 가슴에 달 수밖에 없었으나 어엿한 한국인으로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우리의 민족얼을 한없이 드높여 줬다. 어쨌든 마라톤의 위력은 대단하다.
사회생활의 영역으로 들어와 비견해보면 마라톤은 백년대계 교육의 장기비전 같고, 장기 거시경제 계획과 같고, 미래사회의 장기 비전과도 같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선포하고 조금씩 알차게 실현해가는 교회의 선교 역사와도 같다. 한국사회가 너무나 빨리 단거리 경쟁에만 몰두해가고 있는 것 같다. 숲을 보지 못한 채 나무의 크기와 위상에만 몰두하다 보니 함께 사는 기쁨을 도외시한다. 단거리 속도의 대명사인 IT 산업도 광범위하게 펼쳐져야 할 네트워크가 없이는 발전도 생존도 불가능하다. 국가와 민족의 안보, 생존을 위해 핵무장을 선두로 하여 첨단 재래식 무기로 무장해도 그것들을 움직이고 다스리는 국민의 결집된 마음이 함께하지 않으면 진정한 안보와 평화가 구현되지 않는다.
교회도 예외일 수 없다. 어느 한 교회가 아무리 뛰어나고 부유하고 능력이 많고 훌륭해도 함께하는 다른 교회공동체들이 허덕이고 아프고 눈물에 휩싸이면, 사회로부터 교회 전체가 불신과 비판의 도마 위에 설 수밖에 없다. 개교회의 독특성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교회 전체의 공공성을 서로 나누고 지탱할 수 있어야 올바른 교회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교회가 세상을 염려하기보다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한탄한다. 세상이 잘되고 교회가 못되거나, 거꾸로 세상이 못되고 교회가 잘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는 세상 안에 자리를 펴고 있고, 교회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있기 때문이다. 교회도 세상도 함께 구원받아야 한다. 세상이 오히려 교회를 염려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비극이다.
다시 마라톤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 보자. 마라톤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그리스의 도시인 마라톤을 출발해 아테네로 달리기 선수들이 뛰어온 거리가 42.195㎞였다고 한다. 이것이 1908년 런던 올림픽 때 ‘윈저 성’에서 ‘화이트 경기장’까지의 같은 거리를 마라톤으로 뛰게 하면서 그 거리가 정확하게 확정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마라톤 거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마라톤의 본래 내용이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쌍방간에 전투가 마라톤에서 벌어졌는데, 그리스가 승리했고 그래서 그리스의 승전 소식을 전하려고 마라톤 주자가 아테네 시장에 모인 사람들에게까지 한숨에 달려온 거리가 42.195㎞였다는 것이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기뻐하시오. 우리가 이겼습니다”였고 메시지를 전한 주자는 피로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고 한다. 승전보를 들려준 마라톤인 셈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마라톤의 메시지는 세계의 인류에게 전하는 ‘평화의 승리’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사회는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세계적으로 실히 경쟁력 있는 단거리 선수임에 틀림없다. 남들이 두러워하는 빠른 시일 내에 이룩한 ‘압축된’ 경제성장과 민주화 달성이라는 단거리 선수다. 교회의 성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빠른 시일에 교회 성장의 기적을 이룬 나라는 없다. 그런데 압축 때문에 서로간에 충분히 시간을 두고 갈등을 해소하고, 위로를 나누며, 기쁨도 공유하며, 성장의 질적 성숙을 구현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
이제 마라톤을 시작할 때다. 생각도, 정력도, 시간도, 비전도, 장거리 뛰는 경기로 생각하고 새롭게 다스리며 조정하며 힘을 결집할 때가 되었다. 한국사회는 이미 외형적으로는 선진국 대열로 진입하고 있다. 교회도 이미 글로벌 교회로 발돋움하고 있다. 내용도 알차게 마련할 때다. 외적인 디자인을 아름답게 꾸미면서 동시에 내적인 콘텐츠를 깊고 넓게 만들어가자.
◇박종화 목사 약력: 1945년 충남 보령 출생.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신학석사), 독일 튀빙겐대 신학박사. 한신대 교수,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 1999년∼현재 경동교회 담임목사, 국민문화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