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납세액 징수 정부 시스템] 캠코의 ‘공매’ 무기… 나랏돈 떼먹으려는 자들의 재산 찾아 처분

입력 2013-07-20 04:08


서울시는 건국 이래 최대 금융사기 사건을 일으켜 교도소에 수감 중인 ‘큰손’ 장영자씨의 체납액 8억2000여만원을 지난달에야 징수했다. 장씨로부터 압류한 토지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온비드를 통해 공매한 것이다. 장씨가 종합소득세와 주민세 등을 체납해 재산이 압류된 것은 1987년이었지만,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의 선순위 근저당과 세무서 선압류 등 문제로 국고에 환수되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시는 근저당권 설정 은행을 직접 방문 조사하며 오래된 기록을 찾아 선순위 채권이 존재하지 않게 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4월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일대 임야 5261㎡에 대한 공매를 캠코에 의뢰했다. 토지이용계획서상 개발제한구역으로 설정된 땅이었다. 부동산을 잘 아는 사람들은 “장씨가 정치권에 로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려 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감정가격 16억7100만원으로 지난해 8월 시작된 공매는 지난 5월 2일 끝났다. 9억7900만원에 매각이 이뤄졌고, 지난달 5일 서울시 앞으로 8억2733만4050원이 분배됐다. 서울시는 26년 만에 장씨의 부동산을 현금화하는 데 성공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페이스북에서 “일상적인 재산 압류 등으로는 체납액을 징수할 수 없다고 판단, 출국금지·공매 등 강력한 징수 수단을 총동원했다”고 시민들에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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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이 “강력한 징수 수단”이라고 표현한 것 중 하나는 캠코의 공매 시스템이었다. 캠코는 국세징수법 61조 5항에 근거, 체납 압류재산의 공매 업무를 수행한다. 국세청,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으로부터 체납자들의 압류재산을 위임받아 공매를 통해 자진납부를 유도하거나 압류재산을 매각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캠코 등을 통해 올해 상반기에 교수·의사·기업인 등 사회지도층 14명으로부터 21억3600만원, 종교단체 8곳으로부터 2억400만원의 체납액을 징수했다.

캠코는 숨어 있는 국세·지방세 체납액을 찾아 부지런히 나라에 돌려주고 있다. 공매를 대행해 국가 재정수입에 기여한 돈은 2010년 3825억원, 2011년 4549억원, 지난해에는 3776억원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법인세 체납으로 공매가 의뢰된 전남 목포지역의 아파트 건설 부지를 371억원에 공매, 318억원의 체납액을 징수할 수 있었다. 건축이 중단됐던 아파트 13동은 공매 이후 새 주인을 찾자 공사 재개가 가능해졌고, 캠코는 지역사회에서 구세주로 떠올랐다. 상속세 체납으로 공매가 의뢰된 대구 소재 호텔을 115억원에 공매해 89억원을 징수했고, 법인세 체납으로 압류된 한 개발상사의 비상장주식 52만주를 공매해 76억원을 거뒀다.

캠코는 조세정리부의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 3월 ‘체납징수단’이라는 부서도 신설했다. 위탁징수 시범 대행을 위해 체납징수에 특화된 전담 인력도 새로 뽑았다. 캠코는 올해 상반기에만 자진납부금액 687억원, 배분충당금 700억원 등 총 1387억원을 국가에 돌려주고 있다. 체납징수가 강화되면서 공매 의뢰 수임건수는 지난해 상반기 9671건에서 올해 상반기 1만1957건으로 24% 늘었다.

체납징수의 기반은 캠코가 자랑하는 ‘온비드(On-Bid System)’다. 공공기관들은 온비드를 통해 자산을 신속히 처분하는 동시에 재정 수입을 투명하게 확보한다. 경매와 달리 물건 조회부터 낙찰까지의 전 과정이 인터넷으로 가능한 까닭에, 일반 개인들의 관심도 높다. 캠코 관계자는 “지난해 국세징수법이 개정되면서 일반인이 공매제도를 활용하기 쉬워졌고 입찰 참여자들은 사전에 공개된 정보로 리스크도 줄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전두환 일가에서 나온 불상은

“신발 한 짝이라도 들고 오겠다”던 검찰은 지난 16일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 자택에서 박수근, 이대원, 천경자 등의 그림을 찾아냈다. 장남 재국씨 소유인 경기도 연천 허브빌리지에서 압수한 대형 불상은 특히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 불상은 진품일 경우 최고 감정가가 1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캠코에는 최근 “전두환의 미술품 등이 언제 온비드에 등록되느냐”는 문의가 오기 시작했다. 박수근의 그림이나 불상이 과연 온비드에 나올 수 있을까. 캠코 관계자는 “가능한 일”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압수된 미술품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 소유인지 확인되고, 관계당국의 의뢰가 있다면 공매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했다.

전두환의 미술품이 공매에 나오면 관심이 높아질 전망이다. 캠코의 다른 관계자는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탔다고 알려진 헬기가 산림청 의뢰로 공매됐을 때 관심이 높았다”며 “동산의 경우 전 소유자가 공개되지는 않지만 시기에 따라 이슈가 되는 물건은 경쟁률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추징금을 걷기 위해 캠코에 공매를 의뢰한 사례는 많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차명주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검찰은 2008년 6월 김 전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하던 베스트리드 리미티드(대우개발)의 비상장주식 776만7470주를 압류했고, 2009년 1월 캠코에 공매를 의뢰했었다. 캠코는 지난해 9월 이 주식들을 923억원에 매각했다. 김 전 회장은 차명주식 공매 대금으로 추징금보다 세금을 먼저 내게 해 달라며 캠코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5일 이 소송에서 패했다.

검찰에서 온 특이한 공매 물품 가운데에는 7.09캐럿 다이아몬드도 있다. 2008년 1월 관세청 서울세관이 서울 강남권 일대 귀금속 매장을 대상으로 불법 다이아몬드 특별단속을 실시했을 때 압수한 물건이다. 이 다이아몬드는 조사 결과 정식 통관 절차를 거치지 않은 밀수품으로 드러나 서울중앙지검으로 넘어갔고, 2010년 공매 처리가 됐다. 다이아몬드는 3차례 유찰된 뒤 같은 해 4월 1억2000만원에 새 주인을 만났다.

2010년 1월 7일에는 감정가 6억1000만원 상당의 금괴 1㎏짜리 16개가 6억4688만원에 낙찰됐다. 이 금괴도 서울중앙지검 수사 과정에서 증거물로 압수된 물품이었다. 입찰이 진행될 당시 약 870건의 조회수를 보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캠코의 온비드에는 고가 미술품도 가끔 등장한다. 조선후기 천재 화가 오원 장승업의 ‘기명도 8폭 병풍’, 조선 말 소호 김응원의 ‘묵난도 8폭 병풍’ 등이 공매되기도 했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20여점은 2009년 6월 8억원에 낙찰됐다. 종로세무서가 체납액 대신 압류하고 있던 이 그림들은 명성황후의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