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비자금 수사] 박수근·천경자 등 블루칩 작가 작품들만 ‘은밀한’ 구입
입력 2013-07-19 05:02
어떤 경로를 통해 그 많은 그림을 모았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 압수수색에서 미술품이 대거 쏟아져나오자 구입 경위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18일 미술계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1990년대 초반부터 미술품 수집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문화재급 골동품도 적극 매입해 미술관이나 박물관 하나는 충분히 차릴 정도라는 것이다.
시공사 갤러리가 있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한 화랑 대표는 “재국씨가 1980년대 후반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원 유학 시절, 피카소의 작품에 감동받아 미술 애호가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레스토랑을 겸한 시공사 갤러리에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이 많이 소장돼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규모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재국씨는 1991년 도서출판 시공사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시공사는 한만영 주태석 배병우 구본창 등 당시 30∼40대 작가들의 화집을 출판하면서 출판 작가의 작품을 다수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홍익대 입구에 갤러리 ‘아티누스’와 평창동에 ‘한국미술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유명 화가의 그림을 대거 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국씨가 구입한 그림은 박수근 천경자 이대원 등 이른바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이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자료에 따르면 박수근의 그림값은 최근 10년 사이 최대 3배까지 뛰었다. 90년대 초 호당 1억원에서 2억5000만∼3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천경자의 작품은 호당 4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15배 가까이 올랐고 이대원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철저히 돈이 되는 작품에 투자한 것이다.
재국씨의 그림 구입을 주선한 이는 당시 미술기획자였던 A씨로 현재 문화예술계 뉴스를 전하는 인터넷 매체의 대표다. A씨는 처음엔 갤러리를 통해 그림을 구입했으나 90년대 후반 검찰 조사를 받은 이후 은밀하게 사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CJ그룹 미술품을 서미갤러리가 중개한 것과 달리 화랑을 거치지 않아 작품 출처와 구입 경위가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화랑계는 재국씨와 미술품 거래를 한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한 화랑 대표는 “재국씨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CJ 비자금 사건에 이어 또다시 미술품이 연루되는 것에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압수한 미술품에 대한 진위 감정을 한국미술품감정평가위원회 등에 의뢰했으나 부담스러워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