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광복 후 한센인 6400여명 인권침해 첫 인정… 탈옥범 도왔다며 구덩이에 넣고 사살
입력 2013-07-18 18:02 수정 2013-07-18 22:33
광복 후 수십년간 공권력에 의해 감금과 폭행, 강제노역, 학살 등의 고통을 겪어온 한센인 피해자 6400여명이 정부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17건의 관련 사건은 ‘한센인피해사건’으로 공인받았다.
총리실 산하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5년간 한센인 피해자에 대한 최초의 면접 및 현장 조사를 벌인 결과 총 6462건의 피해 사례를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그 가운데 1758건은 피해자가 이미 사망했다. 위원회는 2008년 발효된 ‘한센인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9년 활동을 시작했다. 조사 대상은 광복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공권력이 개입한 한센인 인권침해 사건으로, 일제 강점기 및 최근 사건은 제외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미 법으로 규정된 3건을 제외하고 총 14건이 ‘한센인피해사건’으로 추가 인정됐다. 소록도병원에서 한센인을 상대로 병원균을 강제 채취하다 대규모 소요사태를 유발한 ‘흉골골수천자사건’과 한센인들이 실종 어린이를 해쳤다고 의심해 경찰이 한센인 3명을 공동묘지에서 총살한 ‘안동어린이 실종사건’ 등이다. ‘무안 연동사건’에서는 목포경찰서 수색대가 1949년 9월 목포 형무소에서 탈옥한 죄수와 옷을 바꿔 입은 한센인촌의 환자를 무차별 사살했다. 수색대는 동네 주민에게 구덩이를 파게 한 뒤 한센인 환자와 어린이 등 40여명을 구덩이에 넣고 총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0년 경남 함안군 물문리에서는 한센인 30여명이 인민군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집단 총살 및 생매장을 당한 일도 있었다. 국립부평병원 원주분원 한센인 40여명은 1963년 병원의 허락 하에 양평군에 정착촌을 건설하다 반대파 주민들의 공격을 받았으며, 한센인 정착마을 인근 초등학교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한센인 2세의 등교를 거부하며 경찰의 묵인 하에 폭력을 행사한 사실도 드러났다.
정부는 한센인 피해자 중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의료지원금을 일시금으로,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4000명(생존자의 85%)에게는 매월 생활지원금 15만원을 지급한다. 정부로부터 생활지원금을 받더라도 개별 피해자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현재 4건의 국가배상 청구소송이 진행 중이다. 최종 진상보고서는 9월에 나온다.
나성웅 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특정 질병을 이유로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차별받은 한센인의 피해가 처음 규명됐다”며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던 한센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국가가 나섰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