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에 금간 52년 부부 금슬

입력 2013-07-18 18:03


파킨슨병과 치매라는 노인성 질환이 반백년 금슬 좋게 살아온 노부부를 결국 이혼법정에 세웠다. 그러나 재판부는 “두 사람은 50년 이상 부부로 서로 의지하고 신뢰했다”며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공군 장교 출신인 남편(90)은 성공한 기업인이 됐고 아내(84)는 헌신적으로 내조하며 두 자녀를 키웠다. 은퇴 후 해외여행을 함께하며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던 부부에게 병마가 찾아온 건 2010년. 남편이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지 몇 달 뒤 아내에게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찾아왔다.

부부가 모두 몸이 불편해져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남편은 한 실버타운에서 8개월가량을 홀로 지냈고, 지방의 한옥을 구해 기거하기도 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삶의 고통을 감내키 어려웠던 부부는 자녀가 거주하는 미국으로 함께 출국했으나 역시 적응하지 못하고 한 달 만에 귀국했다.

귀국 당일 공항에서 크게 말다툼을 한 부부는 결국 별거를 시작했다. 갈등은 오해를 낳고, 오해는 부부의 금슬을 깨뜨렸다. 지난해 폐렴 증세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남편은 “아내가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버렸다”며 이혼소송을 냈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치매가 진행된 아내는 이혼을 원치 않았다. 실버타운에 들어가 다시 같이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법원은 병마로 인해 사이가 나빠진 노년 부부라도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운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부장판사 김귀옥)는 “아내가 동거·부양 의무를 저버린 채 남편을 악의적으로 유기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혼인생활을 계속하도록 강제하는 게 남편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

나성원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