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잡고 박수치고… 당국·은행 수수료 인상 ‘한통속’

입력 2013-07-18 17:50


금융감독원이 수익기반 악화를 우려하며 은행권의 수수료 현실화 필요성을 제기하고 후속조치에 나서면서 수수료 인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금감원이 바람을 잡고 은행권이 박수를 치지만 금융소비자들은 “우리가 봉이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금감원은 은행권에 ‘금융수수료 모범규준’을 만들도록 지도할 방침이라고 18일 밝혔다. 최수현 금감원장이 지난 15일 “적정한 수수료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데 따른 대책이다. 모범규준에는 수수료 원가 산정방식, 산정절차 등의 내용이 담긴다. 수수료 부과 시 나타나는 영향에 대한 외부회계법인의 평가, 소비자단체의 검증도 이뤄진다.

금감원은 불필요한 수수료는 낮추거나 없애겠지만, 정당한 수수료인 데도 은행들이 받지 못하던 수수료가 나타나면 신설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은행권이 모범규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의 원가 분석 작업이 수수료 인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2월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운영할수록 은행들은 손해를 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금감원이 2005년 서울대에 의뢰해 얻은 은행 수수료 표준원가 산정 연구 결과는 “창구 등 대부분 수수료가 원가에 크게 못 미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외부 연구기관이 아닌 은행권이 스스로 수수료 원가를 분석·평가한다면 현재보다 수수료가 낮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에 따라 그간 일부 무료로 제공되던 창구나 ATM, 인터넷·모바일뱅킹 등의 송금서비스에도 수수료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은행권의 경영 효율화, 임직원 평가보상 체계 합리화 등 자구노력보다 수수료 현실화가 먼저 추진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회사들은 실적 발표 시즌에는 앓는 소리를 하지만 정작 임직원의 연봉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적자 점포에 대한 구조조정도 금융회사들의 자율에 맡겨지고 있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은행권의 수익성이 나빠진 원인은 낮은 수수료보다 부실기업에 대한 관리 소홀에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금융소비자들은 은행권이 수익성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서민의 주머니를 터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 금융당국이 이를 도와주는 형국이라고 반발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저금리 기조 속에서 아주 제한적인 경쟁만 벌이는 은행들이 소비자의 참여 없이 계산한 수수료 원가는 믿을 수 없다”며 “금융당국은 수수료 체계보다 은행권의 급여 체계를 먼저 개선하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기식 의원은 논평을 내고 최 원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김 의원은 “금융감독기구 수장이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나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사실상 (은행권) 수수료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도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경원 진삼열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