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맹경환] 멀고 먼 이집트의 민주주의

입력 2013-07-18 18:24


수십만명의 인파가 뒤덮은 광장은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다. 그들의 열망이 정권 교체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민주주의의 ‘해피 엔딩’이다. 문제는 과정이다. 거대 ‘폭력’인 군이 개입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은 국민을 대표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에게 복무해야 한다. 군이 지도자를 갈아 치우고 선거를 통해 새로운 민간인을 국가수반으로 모신다면 그나마 낫지만 스스로 집권한다면 최악이다. 아무리 국민의 열망을 등에 업었다 해도 군이 정권을 엎으면 말 그대로 쿠데타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얼굴인 정권 교체는 폭력이 아니라 투표함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1년 전 투표함을 통해 집권한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은 똑같이 투표함을 통해 쫓겨났어야 했다.

무르시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무르시는 민주화 혁명을 통해 집권한 뒤 여성 부통령과 기독교 대표를 내각에 포함시킬 것을 약속하는 등 화해와 통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모두 지키지 않았다. 미국 외교협회 에드 후세인은 “무르시 내각은 집권 기간 동안 새로운 무역과 투자 협정을 체결하기보다는 대규모 종교 집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고 지적했다.

혁명 이후 이집트인의 삶은 오히려 더 피폐해졌고 그래서 국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78%에 달하던 무르시의 지지율은 쿠데타 직전 32%로 급락했다. 민심을 잃은 지도자가 쿠데타로 쫓겨나자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시민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이런 반론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프랑스 주간지 주르날드디망슈에 따르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지난달 지지율은 26%였다. 프랑스 국민과 군이 올랑드를 쫓아내야 하는가.

민주주의의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는 남녀평등이다. 이집트에서는 거창하게 양성평등을 거론할 상황도 아니다. 반정부 시위의 시발점이 됐던 지난달 30일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취재 중이던 네덜란드 여기자가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아랍의 봄이 물결치던 2년여 전 미국인 여기자 라라 로건이 집단 성폭행을 당했던 바로 그 장소다. 네덜란드 여기자를 강간했던 남자 중 한 명은 스스로를 ‘혁명가’로 칭했다. 무슬림형제단과 함께 무르시의 중요한 지지기반인 살라피스트의 지도자는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를 하는 여자는 수치심도 없고 강간을 당하고 싶어 한다”고도 했다.

이집트에서 성폭행은 일상에 가깝다. 지난 5월 발표된 유엔 성평등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이집트 여성의 99.3%가 성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를 경험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병원 치료는커녕 경찰에 신고조차 할 수 없다. 쿠데타로 해산된 이집트 의회의 전체 499석 가운데 여성이 8석밖에 안된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 8석이나 된다고 해야 할까.

중동에서 이집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기독교인들에 대한 폭력도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집트의 기독교인(콥트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0% 남짓으로 항상 소수였다.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독재 정권이 몰락한 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기독교인들은 반 무르시 진영에 섰다는 이유로 테러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벌써 5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 친 무르시 시위와 폭동에서는 “기독교인들은 알라의 적”이라는 구호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이집트.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을 되새겨본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더욱 소중하다.

맹경환 국제부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