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소나무를 약탈하기 위해 왜구들이 자주 출몰했다
입력 2013-07-18 17:29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강판권/문학동네
조선 초기부터 끊임없이 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는 조정의 골칫거리였다. 세종 3년(1421), 왕은 전라도 관찰사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전라도 섬에 소나무가 무성한데, 대마도에는 배 만들 만한 재목이 없어 왜구들이 전라도 섬에 와서 배를 만들어가지고 돌아간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는 와중에 왜인에게 소나무를 팔아넘기는 조선인도 있었다.
사철 푸른 소나무는 강인한 기백의 상징으로 옛적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역사 속에서 소나무가 국토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안보를 보장하는 핵심적인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나무와 관련된 여러 저서를 내 ‘나무 인간’으로 불리는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가 이번에는 ‘한반도 수호신으로서의 소나무’에 주목했다. 실제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 출몰,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약탈을 일삼았던 왜구가 한반도에 나타난 이유 중 하나가 소나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서는 전한다. 이들은 세종 때의 예처럼 외딴 섬에 정박해 목재로 쓸 소나무를 베어갔을 뿐 아니라, 베어낸 소나무로 그 자리에서 배를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조선 정부의 맞대응도 흥미롭다. 저자는 조선 정부가 군사 분야에서 소나무를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하고 보존했는지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꼼꼼히 확인해간다. 아울러 병선 제작용 소나무의 주요 생산지를 소개하고 병선용 소나무 수급을 둘러싼 조선 정부의 논의와 움직임을 살펴본다.
예컨대, 태종은 1408년 당시 조선 병선이 크기는 크지만 속도가 매우 느려 왜선을 만나도 쫓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움직임이 잽싼 쾌선 체제를 전면 도입해 기동성의 향상을 꾀한다. 귀화한 왜인이 만든 왜선을 활용해 한강에서 조선 병선과의 속력 차이를 직접 실험해보기도 했다. 이러한 일본 병선과의 성능 비교 및 개선 노력은 조선 전기 내내 정부의 역점 사업이었다.
조선 정부의 소나무 성능 개선 노력은 마침내 쾌거를 거둔다. 주인공은 바로 임진왜란 해전의 수훈갑인 거북선을 만든 이순신 장군이다. 임진왜란은 조선의 거북선과 일본의 안택선 간의 싸움이었다. 거북선과 안택선의 싸움은 곧 소나무와 삼나무의 싸움이기도 했다.
저자는 얼마 안 되는 거북선으로도 대군을 이끈 적을 맞아 승리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거북선 재료인 소나무의 위력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안택선의 최대 약점은 바로 재료인 삼나무에 있었는데, 일본의 목조 건물에 많이 사용하는 삼나무는 소나무에 비해 재질이 무르다. 따라서 삼나무로 만든 안택선은 구조상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거북선과 충돌하면 파손 위험이 아주 높다. 그렇게 소나무라는 재질에 주목하며 전하는 명량대첩 등 임진왜란의 전투 장면은 실감 있다.
이 책의 전반부는 조선시대 소나무의 쓰임과 남용 사례, 그리고 조선 정부가 소나무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고 보호하려 애썼는지를 살핀다. 소나무는 한반도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나무였기에 정부도 보존에 힘썼다. 하지만 조선 건국 후 인구가 증가하면서 소나무 소비도 늘어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는 상황이 자연스레 펼쳐졌다. 궁궐의 신축과 보수, 왕가의 장례용 관뿐 아니라 기근 시에는 배 굶는 백성들의 구황식물로 소나무가 쓰였던 것이다.
이런 현실에 맞서 조선 정부는 소나무 자원 고갈을 막기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각종 소나무 보호 규정을 세운다. 또 대대적인 송충이 박멸에 나서고, 소나무 식재를 늘리는 등 다양한 보완책을 실행한다. 마치 개발연대 식목 사업을 연상시키는 조선 정부의 소나무 보존 노력 이면에는 이를 무색하게 하는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가 도사리고 있기도 했다.
이처럼 소나무를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한반도 역사와 함께 그 땅에서 산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때로는 신명나게, 때로는 아프게 펼쳐진다. 저자는 인문학과 식물을 결합하는 공부에 몰두하며 지금까지 ‘세상을 바꾼 나무’ ‘최치원, 젓나무로 다시 태어나다’ ‘나무열전’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 등 나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을 썼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