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청부입법

입력 2013-07-18 17:36

청부(請負)는 일을 완성하는 대가로 일정한 보수를 받기로 약속하고 일을 떠맡는 것을 말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청부의 뜻을 이렇게 풀이한다. 도급으로 순화하라는 안내도 곁들인다. 이 풀이만 놓고 보면 청부가 나쁜 뜻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청부 뒤에 폭행 납치 살해처럼 부정적인 말이 따라붙으면 섬뜩한 단어가 된다.

중견기업 회장 부인 윤모씨가 억대를 주고 망나니를 고용해 여대생 하모씨를 청부살해한 사건이 국민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은 윤씨가 이런저런 병명이 적힌 진단서를 제출해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병원에서 호화생활을 한 것이 드러나 국민의 부아를 돋웠다.

최근에는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부모가 심부름센터나 흥신소에 ‘사적 보복’을 부탁하는 사례까지 생겼다. 건당 15만원에서 2500만원까지 받고 가해 학생을 폭행하거나 학교로 찾아가 난동을 부린다고 한다. 1996년 2월 발생한 ‘수유동 국제 청부살인사건’의 핵심 범인은 외국 폭력조직원이었다. 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외국에서 킬러를 데려온 사건이었다.

정부가 국회의원에게 입법을 청탁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청부입법이다. 우회입법이나 대리입법이라고도 한다. 정부가 입법할 경우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국회법 5조의3(법률안 제출 계획의 통지)에 따라 정부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년 1월 31일까지 그해에 제출할 법률안에 관한 계획을 국회에 통지해야 한다.

이것은 몸 풀기에 불과하다. 통과해야 할 관문이 한둘이 아니다. 법률안 입안, 부처 협의, 당정 협의, 입법 예고, 공청회, 규제개혁위원회, 법제처, 차관회의, 국무회의, 국회 제출이란 절차를 모두 거쳐야 한다. 부처·당정 협의, 공청회, 규개위 심사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국회의원의 입법 절차는 이보다 훨씬 간소하다. 법안을 마련해 의원 1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하면 된다. 국회법 58조는 ‘위원회는 제정 법률안 및 전부 개정 법률안에 대해서는 공청회 또는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 다만, 위원회 의결로 이를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해 당사자들의 견해가 충돌할 수 있는 공청회나 청문회를 회피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이다.

국회의원을 통한 정부의 청부입법은 공론화 과정이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민주적인 방법이 아니다. 정부가 필요에 따라 법률을 제·개정하려면 정공법을 택하는 것이 맞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