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땅서 슬프지만 따뜻한 가족 삶… 아프간 태생 호세이니 신작 ‘그리고 산이 울렸다’

입력 2013-07-18 17:29 수정 2013-07-18 14:24


살다보면 그런 때가 있다. 그 이후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뀔 것만 같은 순간. 페르시아어로 ‘요정’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파리와 그를 지극히 사랑하는 오빠 압둘라. 그들에겐 1952년 아버지 사부르를 따라 아프가니스탄 샤드바그에서 수레를 타고 사막 길을 걸어 카불로 향하던 날이 그랬다. 가난 때문에 아버지가 파리를 부잣집 와다티와 닐라 부부에게 데려다준 날. 그날 이후 모두의 삶이 변했다.

파리는 새 엄마 닐라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가 살고, 압둘라는 고향을 떠나 파키스탄을 거쳐 미국에 정착해 살아간다. 그리고 58년 뒤, 재회. 네 살 때 오빠와 헤어진 파리는 압둘라를 잊고 살았다. 기억하는 건 “오빠의 얼굴도, 목소리도 아닌, 내 인생에서 뭔가가 늘 빠져 있다는 느낌뿐”이었다. 동생의 기억을 간직하고 사는 게 힘들었던 오빠는 치매에 걸려 더 이상 동생을 기억하지 못한다.

삶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잔인한 것인지. 571쪽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걸 참기 힘들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에 대한 분노나 원망으로 번지진 않는다. 더 이상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압둘라이지만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파리의 모습처럼. 읽는 이들 또한 가족이란 존재의 위대함으로 따뜻함을 느끼게 만드는 건 순전히 작가의 힘이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48·사진)가 6년 만에 발표한 신작 ‘그리고 산이 울렸다’(현대문학)는 남매 이야기를 주축으로 9가지 스토리를 촘촘히 엮었다. 호세이니는 2003년 ‘연을 쫓는 아이’, 2007년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인의 삶을 전 세계에 소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라선 인물이다.

이번 작품에선 아프가니스탄을 뛰어넘어 미국과 프랑스, 그리스로 공간을 확대하면서 훨씬 다채로운 아프가니스탄인의 삶을 그려냈다. ‘1제곱킬로미터에 비극은 1000개쯤 되는 것 같은’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은 슬프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애틋하고 따뜻한 시선 때문에 결코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책 제목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유모의 노래’에서 따왔다. ‘그래, 그래, 어두워질 때까지 놀다가/ 집에 가서 자려무나/ 작은 아이들이 뛰고 소리치고 웃었다/ 그러자 모든 언덕이 울렸다(And all the hills echoed)’의 마지막 대목을 언덕보다 산이 많은 아프가니스탄의 지형에 맞춰 변형시킨 것이다. 인간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은 것도 잊어버리지만, 산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모든 것이 바뀌는 순간의 울림을, 그리고 그 울림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지를. 왕은철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