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집으로 가는 것만이 나의 복수”… 김경욱 소설 ‘야구란 무엇인가’
입력 2013-07-18 17:29 수정 2013-07-18 14:23
‘야구란 무엇인가’, 야구에 대한 질문이 계속돼야 하는 것은 12·12와 5·18 때 무력으로 밀어붙인 전두환 정권이 조각난 민심 수습과 국론 통일을 위한 우민정책의 일환으로 1982년 프로야구를 출범시켰기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로 등단 20년차인 소설가 김경욱(42)의 신작 장편 ‘야구란 무엇인가’(문학동네)는 제목과 달리 야구를 다루고 있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소설이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복수 서사라고 할 수 있다.
광주가 고향인 사내에게는 30년 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동생이 있었다. 계엄군이 도청을 점령하고 있던 1980년 5월 광주에서 형제는 길을 지나가다가 한 무리의 군인들에게 걸려든다. 군인 중 하나인 ‘염소’는 형제에게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해보라며 동생 주머니에서 나온 주사위를 내민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동생은 주사위를 던질 뿐이다. “천진한 주사위가 빙글빙글 돌면서 5월의 파란 하늘로 솟구쳤다. 홀수면 빨갱이. 홀수면 빨갱이. 홀수면 빨갱이. 무서운 노래를 부르며 무심하게 솟구쳤다. 온 세상이 주사위를 주시했다.”(171쪽)
그러나 동생은 주사위가 멈추기 전에 입으로 삼켜버린다. 동생은 그런 행동을 괘씸하게 여긴 군인들에게 가혹한 구타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숨지고 만다. 삼켰던 주사위를 항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내보낸 채. 이 어처구니없는 죽음은 한 가족의 삶을 파탄내고 만다. 아버지는 여생을 술로 탕진하다가 화병으로 죽는데, 임종 순간까지 억울함을 달랠 길 없어 관을 눕히지 말고 똑바로 세워 달라고 당부한다. 마침내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자 30년간 웅크린 채 지냈던 사내는 아홉 살 아들 진구를 데리고 복수를 하기 위해 서울의 ‘염소’를 찾아 나선다.
“이 고속도로만 따라가면 염소가 달아난 도시가 나타날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염소가 낌새를 채고 달아날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178쪽)
독자들은 다음 장면에서부터 복수의 서사가 펼쳐질 것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부자가 좀 이상하다. 진구는 아빠의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든 프라이드치킨을 먹어야겠다고 떼를 쓴다. 막무가내인 아들을 사내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사내는 ‘염소’ 대신 치킨 집을 찾아 헤맨다. 그뿐인가. 문득 군산에 있다는 아이의 엄마가 생각난 사내는 아이를 여관에 남겨둔 채 그녀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다. 힘없이 여관에 돌아온 사내는 이내 아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질문은 바뀐다. 대체 복수란 무엇인가.
마지막 장면에서 사내는 말로만 누누이 가보자고 얘기했을 뿐 한 번도 간 적 없는 야구장에 아들과 함께 들어가 호랑이와 곰의 대결을 지켜본다. 연장전 끝에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을 때 아이는 “집에 돌아가자”고 칭얼댄다. 사내는 그제야 알게 된다. “사내도 입은 다문다. 입을 다물고 마음속으로 야구의 진실을 중얼거린다. 그래. 집에 가자. 무사히, 살아서 집에 돌아가자.”(251쪽)
그 말은 30년 전 동생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이 아니던가. 사내는 알게 된다. 야구란, 결국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경기라는 것을. 거쳐야 할 베이스들을 하나씩 정확하게 밟아야 홈 플레이트로 들어올 수 있듯이 우리 삶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김경욱은 ‘작가의 말’에 썼다. “그리하여 당신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그러나 이것은 야구에 관한 소설이 아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