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꽃보다 할배’ 스타 PD 나영석 “할배들 그림 안된다? 역발상 신선하잖아요”

입력 2013-07-18 18:10


과거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을 ‘국민 예능’ 반열에 올려놓은 나영석(37) PD는 방송가를 대표하는 스타 PD 중 한 명이다. 나 PD의 인생관은 그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에세이집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에서 엿볼 수 있다. 가령 책 말미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일은 머리가 시키는 것이 아니고 가슴이 명령하는 것이다. 성공을 좇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두근거림을 좇아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 PD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시청자들의 반응일까, 촬영장에서의 활기일까, 그것도 아니면 하나의 방송 콘텐츠를 완성했을 때 느끼는 보람일까.

최근 서울 상암동 CJ E&M 센터에서 만난 나 PD의 답변은 간단했다. “제일 설렐 때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예요. ‘이게 과연 잘 될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조마조마해지면서 심장이 간질간질해요(웃음). 어떤 방송을 만들지 회의하고 섭외할 인물을 만나러 다닐 때면 정말 흥분돼요.”

케이블 채널 tvN의 ‘꽃보다 할배(꽃할배)’는 나 PD의 이런 ‘두근거림’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꽃할배’는 이순재(78) 신구(77) 박근형(73) 백일섭(69) 등 원로 연기자 4명의 좌충우돌 유럽 여행기를 담아낸다. 지난 1월 KBS에서 CJ E&M으로 회사를 옮긴 나 PD의 방송 복귀작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포맷이 참신하다는 반응이 많다.

“작가들과 회의하다 ‘어르신들이 여행을 가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나와 만들게 된 프로그램이다. 물론 (젊은층이 많이 보는 케이블 방송에서) 어르신들 나오는 ‘그림’을 누가 보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역발상’이 시청자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도 있을 거 같더라. 특히 섭외 과정에서 선생님들 한 분씩 만나면서 의욕이 생겼다. 나보다 훨씬 재밌는 분들이었다.”

-기존 예능 프로그램과 비교하면 출연자들 연령대가 높다. 촬영하며 힘든 점은 없었나.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힘들었다. 젊은 연예인과 촬영하면 출연자들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 사소한 부탁 하나 드리는 것도 너무 조심스러웠다. 오죽했으면 (9박10일 여행 기간 중) 5일째 되는 날 (방송에서 ‘짐꾼’ 역할을 맡은) 배우 이서진(42)씨랑 심각하게 이런 대화를 나눴다. ‘우리 이거 계속 해야 하나’ ‘촬영 그만할까’….”

-방송 2회 만에 출연자들 ‘캐릭터’가 확실히 자리를 잡은 모습이다.

“젊은 연예인들의 경우 이런 포맷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카메라 앞에서 몸이 풀리기까지, 즉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는 데까지 2∼3일은 걸린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달랐다. 촬영 시작하자마자 평소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제작진은 그저 어르신들이 편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갈등 구조가 생겨나고 재미도 나온 거 같다.”

-유럽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면.

“여행 6일째가 됐을 때 박근형 선생님이 스케줄 때문에 한국에 먼저 돌아갔다. 당시 박근형 선생님 배웅하러 어르신들과 공항에 갔다. 젊은 연기자라면 서로 부둥켜안고 아쉬움을 주고받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 서로 ‘잘 가라’고 인사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날 공항에서 돌아와 밥을 먹는데, 유럽에 남은 어르신 세 분이 아무 말씀이 없더라. 세 분 모두 조용히 식사만 하셨다. 그러다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했다. ‘근형이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그 모습을 보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짐꾼’으로 이서진씨를 캐스팅한 이유는 뭔가.

“이서진씨는 어른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깍듯한 사람이다. 이순재 선생님 매니저도 그런 말을 했다. 이서진씨가 2007년 이순재 선생님과 드라마 ‘이산’(MBC)에 함께 출연했을 때, 정말 예의바른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리고 과거 ‘1박2일’에 이서진씨가 잠시 출연했을 때가 있었는데 느낌이 좋았다. 카메라 앞에서 꾸밈이 없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방송을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르신들과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면 어딘가.

“남미를 가보고 싶다. 선생님들도 남미는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문제는 일정이다.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선생님들 스케줄에서 여행 일정을 빼는 게 가장 어렵다(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