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가정이 파괴된 청소년- 눈물겨운 사연들
한번도 집을 가져본 적 없는 가영이
“내가 왜 너를 데리고 있어야 하니?” 오랜만에 만난 새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부부싸움 끝에 집을 나간 상태였다. 지난 2월 가영이(가명·16)는 옷가지가 담긴 짐뭉치 다섯 개를 들고 서울 금천청소년쉼터에 나타났다. 부모는 셋째 가영이가 태어난 직후 갈라섰다. 그 뒤 가영이는 엄마집과 아빠집, 큰엄마네, 엄마 친구집을 전전했다. 오간 곳이 너무 많아 쉼터 상담사가 몇 번을 물어도 몇 살 때 어디서, 누구와 살았는지 가영이는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재혼한 아빠네에 정착할 무렵 가영이는 처음 집을 나갔다. 여관 드나들 듯 집을 오가던 어느 날 새엄마는 “너도 나가라”며 챙겨둔 짐꾸러미를 건넸다.
그렇게 4개월 전 가영이네 가족은 ‘공식적으로’ 해체됐다. 2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장애가 생긴 오빠와 화장품 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언니, 서울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엄마. 아무도 가영이를 찾지 않았다. 쉼터에 들어온 가영이는 어떤 것에도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살아서 뭐해요.” “그건 뭣하러 해. 죽으면 그만인데.” 열여섯 소녀는 종종 웅얼댔다. “내가 여기 와서 사람 대접을 다 받네.” 이런 말로 쉼터의 어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쉼터 관계자는 “사랑도,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너무 오랜 시간을 떠돌며 지낸 아이가 모든 일에 지치고 무기력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일곱 살 이후 부모의 기억이 없는 태성이
태성이(17)가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건 일곱 살 때였다. 엄마 얼굴은 아예 기억에 없다. 엄마는 태성이가 태어나고 몇 개월 만에 이부(異父)누나와 함께 집을 나갔고, 아빠는 태성이를 친가에 데려다놓고 연락을 끊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할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에는 작은엄마네로 옮겼다. 1년 뒤 태성이의 첫 가출이 시작됐다. 잡히면 나가고 나갔다가 집에 끌려오길 2년여. 어느 날 작은엄마가 경찰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런 애 몰라요.” 그렇게 중학교 1학년생인 태성이의 삶에서 돌아갈 ‘집’은 영원히 사라졌다.
그 뒤 태성이는 서울 신림·강남·강서, 의정부, 대전까지 청소년쉼터 5곳을 전전했다. 신림쉼터에는 1∼2개월씩 3번을 드나들었다. “인생이 늘 벼랑 끝이어서 생존 정보는 빠삭해요(웃음).” 태성이는 전국의 쉼터 정보를 꿰고 있었다. 1년은 거리에서 살았다. 밤마다 놀이터, 건물 옥상, 찜질방 등을 돌았고, 가끔은 친구네 담벼락에 이불을 깔고 잤다. 마음을 다잡고 아동복지시설에 입소해 충남의 한 공고에 다닌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거리생활에 익숙한 태성이는 그곳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가족과는 딱 한번 연락이 닿았다. 2년 전쯤 메신저로 말을 걸어온 게 누나였다. “엄마를 만날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누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 태성이의 눈가가 잠깐 붉어졌다. “몇 마디 나누다가 화가 나서, 나는 이렇게 힘든데, 이게 무슨 가족이냐,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 그랬더니 누나가 딱 한마디로 응, 해요. 그걸로 끝이었어요.”
병현이, 기찬이, 그리고 더 많은 사연들
초등학교 3학년 병현이(9)는 몇 개월 전 길거리 쓰레기통 옆에서 잠을 자다 경찰에 발견됐다. 일용직 노동자인 병현이 아빠는 밤마다 PC방에서 게임을 했다. 그 사이 병현이는 매트리스 한 장과 바퀴벌레, 상한 음식들이 뒤엉킨 방에서 배를 곯다가 거리로 나섰다. ‘생존형 가출’인 셈이다.
일주일 전 기찬이(14)는 10번째 가출을 감행했다. 이번엔 한 달쯤 쉼터에 머물 계획이다. 공무원인 아빠는 2011년 엄마와 이혼한 뒤 기찬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화장실 불을 끄지 않았다거나 신던 양말을 던져놓았다거나 그런 이유였다. “신고할까 생각해봤는데 아빠잖아요. 미안하다고 하면 다시 집에 가야지요. 때리면 또 나오면 돼요.” 기찬이는 더러워진 신발 얘기를 하듯 무심히 말했다.
새엄마와의 갈등 탓에 올해로 가출 10년차가 됐다는 베테랑과 친부의 성폭행을 피해 온 소녀, 엄마의 동거남에게 미움을 받아 쫓겨난 아이까지 서울시내 청소년쉼터 두 곳에서 10대 아이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어둡고 길고 복잡했다. 폭행, 방임, 유기, 무관심까지 다양한 수준과 방식으로 버림받은 아이들에게는 숙식을 해결할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도, 정서적 지지대로서의 가정도 없었다. 부모의 이혼은 예외 없이 발견되는 현상이었다. 부부가 헤어지면서 아이들은 짐짝처럼 옮겨졌고, 방황이 시작됐다. 첫 위기는 대개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찾아온다. 초기에는 며칠 혹은 1∼2주 단위로 단기 가출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을 만나 거리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힌다. 차츰 3∼4개월 이상의 장기 가출이 이뤄진다. 그렇게 10대 중·후반에 도달한 아이들은 나름의 생존 노하우를 익힌 ‘홈리스 청소년’으로 자라나게 된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홈리스, 쫓겨난 아이들] “새엄마가 나도 나가래요… 옷 보따리 들고 나왔어요”
입력 2013-07-17 18:36 수정 2013-07-17 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