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준동] 국가대표의 품격
입력 2013-07-17 17:52
“고맙다. 내셔널리그 같은 곳에서 뛰는데 대표팀 뽑아줘서. 소집 전부터 갈구더니 이제는 못하기만을 바라겠네 님아ㅋㅋㅋ 재밌겠네ㅋㅋㅋ.”
최근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축구 국가대표팀의 기성용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비밀계정에 올린 글이다. 기성용이 이 글을 작성한 것은 지난해 2월 쿠웨이트와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을 앞둔 시점이다.
쿠웨이트와의 경기를 마친 후에는 또 이런 글을 올렸다. “사실 전반부터 나가지 못해 정말 충격 먹고 실망했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느꼈을 거다. 해외파의 필요성을. 가만히 있었던 우리를 건들지 말았어야 됐고 다음부턴 그 오만한 모습 보이지 않기 바란다. 그러다 다친다.”
태극마크의 가치 잊지 말길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최강희 감독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있어 가히 충격적이다. 대표선수의 품격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비난 여론이 거세자 기성용은 모든 SNS 계정을 폐쇄했고 소속사를 통해 사과문도 발표했다. 스트레스 해소용 쯤으로 이용했을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이렇게 큰 비난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 기성용은 몰랐을 것이다. 일부 대표선수들도 기성용에게 동조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자 대표팀에 대한 시선은 싸늘해졌다. 이렇게 되자 최 감독의 후임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갓 잡은 홍명보 감독은 ‘국가대표의 품격’을 강조하고 나섰다. 동아시안컵을 앞두고 17일 경기도 파주 NFC에 집합하는 선수들에게 ‘정장 착용’을 요구한 것이다. 솔선수범하는 의미에서 홍 감독은 이날 양복을 입고 ‘대표팀의 요람’ NFC 정문에서 하차해 걸어서 숙소까지 이동했다. 정장 착용으로 땅에 떨어진 대표팀의 품격을 끌어올리고 선수들이 다시금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게 그의 계산이다.
잉글랜드나 스페인 등 다른 축구 선진국가는 물론 이웃 일본도 대표팀 소집 때 정장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에게 불편한 정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정신적인 무장과 함께 엄숙함을 갖추라는 뜻일 것이다. 홍 감독은 물의를 일으킨 기성용에 대해서는 “축구협회의 엄중경고 조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옐로카드’를 보냈다. 그러면서 “기성용은 국가대표로서 스승에게 적절치 못한 행동을 했다. 바깥세상과의 소통보다는 부족한 내면세계의 공간을 넓혀가야 한다”는 지적까지 했다.
최근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에서 은퇴한 명장 알렉스 퍼거슨은 트위터와 선수들의 태도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런 걸(트위터) 할 시간이 없다. 그것 말고도 인생에서 할 일은 수백만 가지가 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라. 심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시간 낭비일 뿐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점점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모두가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클럽 입장에서는 지켜봐야 한다. 그들이 때때로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말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줘라
지금은 은퇴했지만 체코 축구대표팀의 전설로 불린 파벨 네드베드 선수도 현역시절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하루에 12시간을 연습했고 두 다리 중 어느 한 다리가 강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다. 스파르타 프라하 시절 나는 경기 직후에 곧바로 훈련장에 가서 훈련했고 쓰러져도 다시 필드의 잔디를 잡고 일어섰다. 나의 일과는 연습장의 조명이 꺼질 때 끝났다.”
퍼거슨이나 네드베드나 선수는 SNS나 입이 아닌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말해야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왼쪽 어깨에 달린 태극 마크의 무게와 가치를 좀 더 진중하게 느꼈으면 한다.
김준동 체육부장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