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역사과목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입력 2013-07-17 17:49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흡사 주문(呪文)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적어도 중학교 입시를 경험했던 50대 중반 이상 세대에겐 익숙한 울림이다. 그보다 조금 젊은 세대도 나름 전수(?)를 받았을 터라 아주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시절 초등생들은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등으로 이어지는 조선조 임금의 이름을 그렇게 첫 자를 따서 외웠다.

사실 공부에는 어느 정도 암기가 동반되기 마련이다. 기본적인 사건이나 용어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면 그 다음 단계로 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학, 과학에서조차 필요한 정리나 공식을 포함하여 전문적인 용어가 따로 놀면 내용을 이해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암기위주 교육은 짧은 시간 내에 대량의 정보를 학습자가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물론 단점도 적지 않다. 정보량은 늘었지만 그게 모두 수박 겉핥기식이라서 외우기만으로는 분석력이나 창의력을 키우기엔 역부족이다. 외우기는 마치 퀴즈왕 선발전에 나가려는 사람들처럼 자세한 내용은 그만두고 단답형 질문만을 파고들게 만든다.

그 여파는 학문의 현장인 대학과 대학원에서 훨씬 심각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섭렵해야 할 스미스의 ‘국부론’, 케인스의 ‘고용 이자 화폐에 대한 일반이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기초적인 고전조차 그저 책 이름 정도만 알 뿐 실제로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현상은 다른 학문분야도 비슷할 것이다.

낑낑거리며 두꺼운 고전을 읽기보다 책이름과 저자를 기억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얄팍한 태도가 암기교육의 폐해인 셈이다. 내용을 깊이 이해하기보다 겉모양만을 얼추 파악하여 쉽게 덤비려는 단기 성과주의도 바로 그 암기위주 교육에서 비롯됐다.

최근 역사교육이 도마에 올랐다. 청소년들이 역사를 너무 모른다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수능시험에 역사과목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런다고 청소년들의 역사 이해도가 높아질까. 죽어라 암기를 또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역사에 대한 반감만 더 쌓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초점은 역사교육의 당위성을 주저리주저리 강조하는 데 있지 않다.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역사교과가 암기과목이란 오해에서 벗어나려면 스토리가 있고 맥락이 있는 역사교육이 먼저 뿌리내려야 한다. 재미를 주는 역사교육법이 절실하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