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잎에서 배우는 ‘비움의 철학’ 부여 서동공원 등 연꽃축제
입력 2013-07-17 17:22
연꽃이 피는 계절이다. 심신을 지치게 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에 진흙탕 속에서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는 연꽃은 사뭇 시적이고 철학적이다. 호수의 가장자리나 저수지 또는 습지의 수면을 뒤덮은 초록잎 사이에서 솟아난 꽃대들. 그리고 그 가녀린 꽃대에서 피어난 홍련과 백련은 그윽한 향의 시어를 품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연꽃은 예찬의 대상이다. 중국 송나라의 사상가 주돈이는 애련설(愛蓮設)에서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로 씻어도 요염해지지 않네. 줄기 속은 비었으나 겉모습은 올곧으며, 이리저리 늘어지거나 가지를 치지 않네. 향기는 멀리까지 퍼져도 오히려 더욱 맑으며, 고고하고 꼿꼿하여 멀리서 바라만 볼 수 있지 가까이서 매만질 수는 없어라”고 노래하면서 연꽃을 화중군자(花中君子)라고 예찬했다.
연꽃은 비 내리는 날에 더 철학적이다. 굵은 빗방울이 초록 연잎에 떨어지는 소리는 보석이 쟁반을 구르듯 청아하다. 부채보다 큰 연잎에 영롱한 빗방울이 고이면 연잎은 진주처럼 영롱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 버린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진리를 찾아 연꽃축제가 열리는 부여 서동공원 등으로 비움의 여행을 떠나본다.
◇서동공원(충남 부여)=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인 궁남지를 품고 있는 서동공원은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백련, 홍련, 수련, 창포, 가시연 등 수백 종의 연꽃과 수생식물이 피고 진다. 궁남지(宮南池)는 백제 궁궐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 수양버들에 둘러싸인 거대한 연못 중앙에는 나무다리로 연결된 포룡정이라는 정자가 위치하고 있다.
생태공원인 서동공원의 연꽃밭은 규모가 38만여㎡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다. 곳곳에 원두막 등 쉼터가 조성돼 있다. 연꽃밭 사이로 조성된 8㎞ 길이의 산책로는 다양한 연꽃을 비롯해 수생식물과 곤충, 왜가리, 물닭 등을 관찰하는 탐방로. 연꽃이 피는 계절에는 사진작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서동공원에서는 18일부터 21일까지 4일간 부여서동연꽃 축제가 열린다. 수상무대에서는 무왕즉위식과 서동선화 나이트 퍼레이드 등이 펼쳐진다. 백제공방 체험을 비롯해 연꽃탁본 체험, 연잎차 다도 체험 등 연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이벤트도 인기. 탐방로 곳곳에 포토존을 설치하고 밤에도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연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경관조명을 설치한다(041-830-2922).
◇그린리치팜(충남 태안)=지난 12일부터 ‘태안연꽃축제’가 열리고 있는 태안군 남면의 그린리치팜(옛 청산수목원)은 9만9200㎡ 규모의 습지정원. ‘영원한 농군’ 신세철씨가 평생 국내외에서 수집한 연꽃 및 수련 200여종을 비롯해 수생식물 100여종과 수목 및 야생화 300여종이 황홀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주요 수생식물 서식지인 예연원은 다양한 수생식물과 수생곤충들이 서식해 생태학습지로도 제격이다. 또 만(卍)자 모양의 만의길은 연못에 핀 온갖 연꽃을 감상하는 탐방로.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즐겨 그린 랑그루아 다리를 재현해 만든 ‘고흐 브리지’는 이국적 정취와 함께 그린리치팜의 명물로 꼽힌다. 연꽃축제는 8월 25일까지(041-675-0656).
◇상림연꽃단지(경남 함양)=통일신라 때 최치원이 조성했다는 ‘천년의 숲’ 상림 옆 농경지에 조성된 상림연꽃단지는 7만3600㎡로 홍련과 백련 등 연꽃 150종, 수련 100종, 수생식물 50종이 활짝 피어 있는 아기자기한 꽃밭이다. 특히 천연기념물인 원앙새가 연꽃밭을 헤엄쳐 연꽃이 지는 8월 말까지 고즈넉한 풍경을 연출한다. 연꽃단지 옆에 조성된 각양각색의 수세미와 조롱박 터널도 볼거리.
상림연꽃단지의 주인공은 밤에만 피는 빅토리아 가시연꽃. 이 연꽃은 2∼3일 동안 밤에만 꽃이 핀다고 해서 ‘밤의 여왕’으로 불린다. 첫날 낮에 봉오리가 물 위로 올라온 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꽃봉오리가 4쪽으로 갈라져 흰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둘째 날 저녁에는 꽃잎이 하나하나 벗겨지면서 핑크색으로 변해 왕관처럼 화려한 자태를 뽐내다가 물속으로 가라 앉아 이틀 만에 일생을 마감하는 특이한 연꽃이다.
함양군은 빅토리아 연꽃이 피는 8월 1일부터 5일까지 상림공원 및 연꽃단지 일원에서 함양산삼축제를 개최한다. ‘천년의 신비 세계의 명약’을 슬로건으로 열리는 산삼축제는 산삼 캐기, 산삼화분 만들기, 심봤다 메아리 체험 등 산삼과 연계한 다양한 체험행사가 진행된다. 산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산삼번개장터 등 이벤트도 곁들여진다(055-960-5174).
◇회산백련지(전남 무안)=24일부터 28일까지 ‘무안연꽃축제’가 열리는 회산백련지는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 해마다 이맘때면 33만㎡ 크기의 저수지를 수놓은 초록 연잎 사이로 수줍은 듯 살포시 고개를 내민 백련의 자태가 고혹적이다.
회산 연꽃방죽으로도 불리는 회산백련지에는 백련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저수지를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는 약 800m의 탐방로와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나무 데크로 만든 탐방로는 높이도 낮아 멀리서 보면 탐방객들이 저수지 수면을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메기 붕어 잉어 가물치 등이 바글거리는 회산백련지는 백련을 비롯해 희귀종인 가시연, 홍련, 수련 등 50여종의 수생식물이 자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보트를 타고 저수지의 백련 숲을 달려보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거리(061-450-5472).
부여·함양=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