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기록을 찾아서] (6) 일본 유도영웅 야마시타
입력 2013-07-16 18:42
203연승… 8년간 패배 쓴맛을 몰랐다
유도 종주국 일본은 대대로 뛰어난 유도 선수들을 배출해 왔다. 하지만 이들 선수들 중에서도 ‘유도 영웅’으로 불리는 야마시타 야스히로는 일본에서 모든 종목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선수로 꼽힌다. 특히 그가 현역 선수 시절 기록한 8년간 203연승은 유도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깨지기 어려운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혹시 유도 팬들 중에는 가노 지고로, 사이고 시로, 기무라 마사히코 등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활동한 전설적인 인물들을 빼놓은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는 유도가 스포츠가 아닌 무예로서 간주됐던 만큼 야마시타와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유도의 헤비급인 95kg이상급에서 활약한 야마시타는 굳히기와 허벅다리후리기 기술이 뛰어났고, 경기 운영 능력은 따라올 상대가 없었다. 좋은 체격과 재능을 타고난 그는 고등학생이던 17살 때 전(全)일본유도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오르는 등 일찌감치 일본 유도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살 때 전일본유도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뒤 은퇴할 때까지 9연패를 달성했다.
그의 놀라운 연승 행진은 1977년 10월 일본과 옛 소련의 친선 유도경기에서 상대 선수를 꺾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각종 국내외 대회에서 부상으로 출전하지 않은 때를 제외하면 모두 이겼다. 특히 외국 선수들을 상대로는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유도가 정식 종목이 된 이후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부상이 그의 선수 생활을 단축시켰다.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 그는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택했다. 당시 은퇴 경기가 바로 전일본선수권대회였고, 거기서도 1위에 오르면서 203연승을 기록했다.
그런데, 그가 203연승과 함께 가장 뿌듯해 하는 것은 84년 LA올림픽 금메달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올림픽에 한이 맺혔기 때문이다. 대학 1학년 때 맞이한 76년 몬트리올올림픽은 최종 선발전에서 2위에 그쳐 출전하지 못했고, 80년 모스크바올림픽 때는 다리 골절 부상을 참아가며 출전 자격을 따냈지만 미국 등 서방 국가의 보이콧으로 출전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LA올림픽에서 그는 2회전 도중 장딴지 근육이 파열되는 치명상을 입고도 초인적인 힘으로 금메달까지 따냈다.
그는 은퇴 이후 지도자로서도 승승장구했다. 88년 서울올림픽, 96년 애틀랜타올림픽 그리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일본 유도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다. 또한 96년부터 일본 도카이대학 체육학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2003∼2007년 국제유도연맹 이사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올해 일본올림픽위원회의 이사가 되어 도쿄의 2020 올림픽 유치에 앞장서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