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요충지 지브롤터… ‘스페인속 영국’ 300주년
입력 2013-07-16 18:34
스페인 남부 교통요지인 지브롤터.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모로코를 바라보는 전략요충지로 연평도와 비슷한 6.5㎢에 불과하다. 2만8000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곳은 그러나 스페인어 대신 영어를 쓰는 영국 식민지다.
이들 주민의 기구한 운명은 17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 왕위전쟁에 개입한 영국은 스페인을 격파하고 지브롤터를 점령한 뒤 1713년 7월 유트레히트조약을 체결해 이곳을 식민지로 삼았다.
지브롤터 양위 300주년을 맞은 지난 13일 존 매킨토시 광장을 비롯한 시내 중심가에는 그러나 축하 깃발이나 포스터 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거리 곳곳에는 영국 전통 음식인 ‘피시앤칩스’와 맥주를 들고 다니는 관광객만 보일 뿐 흔한 기념 머그컵조차도 볼 수 없었다. 300주년 기념우표만이 우체국에서 판매되는 정도였다.
지브롤터 할양 300주년을 맞아 지브롤터의 반환을 요구하는 스페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지브롤터는 별다른 기념식도 개최하지 않은 채 조용한 300주년을 보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13일 전했다.
스페인은 줄곧 지브롤터 반환을 주장하고 있다. 조약이 영구 할양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스페인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스페인은 1969년 양국 경계선을 폐쇄하고 항공기 영공 통과도 불허했다. 지난달 23일에도 양국 해상분계선 인근에서 제트스키를 타던 민간인을 향해 해양경찰이 고무총탄을 발사하는 등 실력행사를 지속적으로 했다. 이에 영국은 스페인을 강력 비난했다.
양국의 정치적 대립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지브롤터 시민의 마음은 복잡하다. 대부분 시민은 영국령으로 남는 것을 찬성하고 있다. 특히 최근 스페인의 경제위기로 실업률이 40%나 되는 상황에서 완전고용 상태인 현 상황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영국 주민이 된 것에 대한 열등감도 있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지브롤터 정부는 15일 이례적으로 유트레히트조약에 따른 지브롤터 할양 300주년 보도자료를 냈다.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의 거주 제약이 포함된 유트레히트조약은 구시대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300년 전 왕정시대에 체결된 조약이 주민들의 자기결정권과 탈식민권리가 부정되는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브롤터 정부는 이런 이유로 지브롤터 할양 300주년과 관련한 축하의식을 치르지 않고 기념식만 치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유트레히트조약 해석을 둘러싼 스페인과 영국의 논쟁 종식을 위한 심포지엄도 10월에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