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조성돈] 답답한 이 세상
입력 2013-07-16 17:52
장마가 시작된 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무더위와 함께 시작되는 장마는 습기로 인해 숨 쉬는 것도 버겁게 한다. 비가 그치고 햇빛이 비춰주었으면 하지만 실상 잠깐 나는 그 햇빛에 땅의 습기가 올라 더 답답하기만 하다. 소나기는 무더위에 지친 우리에게 상쾌함을 선사하지만 오래된 장마는 더위에 답답함까지 더해주고 있다. 그래도 장마는 시간이 흐르면 지나간다. 지나갈 것을 알기에 좀 힘들어도 제철의 일이겠거니 하며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답답하다. 습기 가득하여 무덥기만 한 장마보다도 이 세상이 더 답답한 것 같다. 둘러보아도 어디 하나 시원하게 뚫린 것이 없다. 여야를 암만 뒤집어 봐도 싸움은 그치지 않고, 막말에 폭력만 난무한다. 구시대가 물러나면 새로운 세대가 무엇을 바꾸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변한 것은 없다. 오히려 지능적이고 자극적인 언어만 늘어나고 있다. 그들에게 기대해 봤자 국민은 간 곳 없고 정당의 논리만 있는 것 같다.
기적이 아니라 임재를 기대할 때
남북 관계 역시 나아진 것이 없다. 북한의 핵무기는 실존하는 위협이 되었고, 통일은 요원해진 것 같다. 그들이 변하기를 기대해 보지만 3대가 지나도록 변함이 없다. 금강산에 이어 이제는 마지막 끈과 같던 개성공단마저 막히고 말았다. 이 문이 언제 다시 열릴지 아직은 알 길이 없다.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지만 무너진 신뢰가 회복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경제는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불경기라고 하는 말도 이제 특별하지 않다.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국가부도에 몰리고 있다. 오래된 불경기로 경제의 순환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어려움 가운데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 불경기를 버티지 못하고 망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직장에서 물러나고 새로운 사업을 벌였다가 망한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경우에 몰려있지 않다고 해도 이 상황에서 뾰족한 수를 가진 사람은 없다. 달마다 월급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미안해서 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경제상황은 답답한 궁지에 몰려 있는 것 같다.
이러니 사회적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궁지에 몰린 이들이 포악해지고, 폭력을 휘두른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긍휼이 아니라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의 교실에서 희생양 이론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같은 반 친구를 제물로 삼아 자신들의 분노를 불태우는 것이다. 이렇게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을 향해 폭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자기 몸을 건물 옥상에서 내던진다.
정말 세상이 답답하기만 하다. 물론 일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언제는 우리가 이렇게 안 살았느냐고 말이다. 사실 이러한 상황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래도 전에는 가끔씩 한 더위에 소나기 쏟아붓듯 속 시원해지는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구멍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어렵다. 이 답답함이 누적되어 우리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은 쌓인 것 털어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털어낼 일이 없으니 이것들이 쌓여만 간 것이다.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 찾아야
이제 어려움은 피해갈 길이 없다. 꽤 오랫동안 이 답답함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이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가운데 특별함을 원하는 것은 오히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몽상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가운데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기적만을 기다리는 허망함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찾아와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