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홍투라치

입력 2013-07-16 17:56

영화 ‘엑스맨’ 시리즈는 돌연변이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울버린은 손등에서 강철 칼날이 튀어나오는 능력이 있고, 매그니토는 철을 자유자재로 조종한다. 스톰은 날씨를 마음먹은 대로 바꿀 수 있다. 1960년대 만화가 원작인 오락영화지만 정상적인 인간에게 이용당하거나 차별받는 돌연변이들의 고뇌가 담겨 있기도 하다.

1995년에 만들어진 영화 ‘워터월드’의 주인공도 돌연변이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모두 녹아 지구 전체가 바다에 잠겨버린 미래가 배경이다. 케빈 코스트너가 연기한 마리너는 물 속에서 아가미로 숨을 쉬고, 손가락 사이에 생긴 물갈퀴로 돌고래만큼 빠르게 헤엄을 친다.

그러나 현실 속 돌연변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것처럼 초인적이거나 낭만적이지 않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유전물질은 100만번 자기복제를 할 경우 한 번 정도 변형이 일어난다. 그 결과로 돌연변이가 나타날 수 있다. 방사선이나 화학물질의 영향을 받으면 빈도는 훨씬 잦아진다. 1926년 미국 유전학자 허먼 멀러는 붉은 눈 초파리에 X선을 쬔 뒤 교배시켜 검은 눈을 가진 초파리를 만들어냈다. 이후 유전공학의 발전에 힘입어 돌연변이는 동식물 품종 개량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돌연변이는 낯설고 두렵다. 대규모 방사능 물질 유출 사고 이후에 반드시 등장하기에 더욱 그렇다. 체르노빌 원전 인근에서 발견된 초대형 메기와 길이 1m짜리 지렁이가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는 일본 류큐대 연구팀이 후쿠시마 등에서 남방부전나비를 채집해 “심각한 돌연변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피해자들은 34년이 지난 지금도 돌연변이 채소 사진을 들고 시위를 한다. 돌연변이 존재 자체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규모 환경재앙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어제 그제 인터넷에서는 ‘여수 괴 물고기’ 사진이 큰 이야깃거리였다. 한 낚시꾼이 전남 여수 백야도 바위틈에서 발견한 물고기인데, 타원형 몸통에 이상하게 생긴 꼬리, 등과 배에 있는 길고 붉은 지느러미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생긴 돌연변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뒤따라 나왔던 수많은 억측은 국립수산과학원이 심해성 희귀어인 ‘홍투라치’라고 발표한 뒤 잠잠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원전 사고에 따른 환경재앙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