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은 있다” 무신론자에게 가하는 일침
입력 2013-07-16 17:22 수정 2013-07-16 17:10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김용규 지음/휴머니스트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신과 종교, 사후세계 등에 대해 제기한 24개 질문에 인문학적 답변을 내놓은 책이 나왔다.
이 책의 저자인 철학자 김용규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이 회장의 질문에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저자는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등으로 구성된 이 회장의 질문이 치기 어린 호기심으로 두서없이 던진 물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죽음 앞에 선 모두가 마주해야 할 ‘숙명적’ 질문으로 누구나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보편적 질문이라는 것이다.
이 회장의 24개 질문 속엔 신의 존재 여부와 속성, 신과 진화론의 관계, 죄와 구원, 종교의 믿음과 실체, 교리가 가진 문제점,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종교인들의 윤리적 문제 등이 폭넓게 담겨 있어 기독교 교리 전반을 논하기에 적합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이 회장의 24개 질문은 독자에게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주제일지 모른다. 2011년 차동엽 신부의 ‘내 가슴을 뛰게 할 잊혀진 질문’을 시작으로 다양한 이력을 가진 저자들이 그들의 관점에서 이 회장의 질문에 답한 책을 연이어 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인상적인 것은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종교의 종말’의 저자 샘 해리스 등과 같은 무신론자에게 가하는 일침 때문이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새롭게 등장한 이들 무신론자들은 ‘종교는 망상이며 온갖 전쟁과 테러의 온상이므로 없어져야 한다’는 ‘종교해악론’과 ‘종교말살론’을 주장하는 특성을 보인다. 책은 이들의 주장이 결코 정당하지 않을 뿐더러 종교인의 신념에 대한 공격이자 폭력을 자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이들의 논리에 종교 대신 과학을 적용한다. 인류는 언제나 당대의 첨단 과학으로 무기를 만들었고 이를 이용해 전쟁과 테러를 자행해 왔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과학을 아주 없애버려야 할까. 저자는 다소의 부작용이 염려되더라도 과학을 인류가 보전하고 발전시켰듯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과학이든 종교든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측면을 최대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질문의 특성상 종교적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저자는 일관되게 인문학적 관점으로 이 회장의 질문에 답한다. 기독교 전반을 다루지만 종파나 교파, 특정 신학적 입장에서 설명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하느님’이나 ‘하나님’이란 용어 대신 ‘신’이란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책은 가톨릭과 개신교 가운데 어느 쪽을 진리라고 말하기보다 종교 밖에 있는 이들에게 논리적으로 신의 개념을 설명하고 잘못 알려진 기독교 교리를 바로잡는 데 중점을 둔다.
책에서는 오늘날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룬다. ‘우리나라에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란 질문에 저자는 교회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복음 전파와 같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서라면 교회의 어떤 사역도 허용된다는 정당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교회 이데올로기’ 때문에 11세기 십자군이 행한 불의가 허용됐기에 저자는 오늘날 한국 교회도 이러한 논리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거듭해 당부한다.
덧붙여 저자는 책에서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를 한 구절 인용해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에게 교훈을 남긴다. “교회가 참으로 행복한 때는 교회가 하나님의 약속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있을 때다.” 기독교에 대한 무신론자의 논박이 폭력적이고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하거나 기독교에 대한 인문학적 시각이 궁금한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