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지 않는 아름다움… “스텐의 매력에 빠졌어요”
입력 2013-07-16 18:08 수정 2013-07-16 23:10
‘블링블링 스텐이야기’ 펴낸 전지현씨
철강 관련 전문가 모임인 한국철강협회 세미나에 단골강사로 나서는 주부가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보다 박수를 더 많이 받는 홍일점 전지현(43)씨다. 전씨는 세계 제1의 철강회사 ‘포스코’가 펴내는 ‘포스코신문’의 인기 필진이기도 하다. 스테인리스(스텐) 주방도구에 관한 한 ‘만물박사’로 ‘블링블링 스텐이야기’를 이달 초 펴낸 전씨를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자리한 스텐주방용품 제조사 ‘동남코리아’에서 만났다.
“스텐을 연구한 사람도 아니고 전문가로 나서기는 좀 쑥스럽네요. 하지만 스텐 제품의 특성만큼은 제품을 만드는 분들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전씨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졸업한 뒤에도 스텐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했단다. 그런 그가 냄새가 배지 않고 해로운 물질이 우러나지 않아 위생적이고 안전한 데다 대를 물려 쓸 수 있을 만큼 견고해 경제적인 스텐을 알리는 ‘전도사’로 나선 것은 스텐 프라이팬과의 불편한 관계(?)에서 비롯됐다.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에 불쑥 사표를 내고 전업주부가 된 전씨는 “유명 셰프들처럼 스텐 프라이팬으로 멋지게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스텐 프라이팬을 마련했다. 그때가 2001년.
“계란 프라이는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해졌고, 생선구이는 껍질이 벗겨지고 살점이 부서져 무슨 생선인지 알 수조차 없었지요.”
2년여 동안 스텐 프라이팬은 그에게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오기로 버티던 그에게 스텐 프라이팬은 어느 날 성문을 활짝 열었다. 예열한다고 팬을 불에 올려놓은 채 깜빡 잊은 실수가 열쇠였다. 심하게 가열되어서 갈색을 띤 팬, 부랴부랴 불을 끄고 식힌 다음 식용유를 두르고 생선을 올리자 이게 웬일? 쩍 달라붙던 예전과는 달리 ‘쓰윽’ 미끄럼을 탔다.
“그동안 예열이 부족했던 거였어요. 10분쯤 약불에 올려놓아야 했는데, 늘 1,2분 모자랐던 거였죠.”
실수 덕분에 ‘눈물겨운 깨달음’을 얻게 된 그는 ‘달라붙는다고 해서 스텐 팬 쓰기가 망설여진다’는 한 주부의 인터넷 게시판 글에 예열법을 알려 줬다. 2004년 7월21일이었다. 그 글은 예상 외로 빠르게 물결처럼 번져나갔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쪽지를 받았다. 그만큼 스텐 팬에 대한 주부들의 관심과 고민은 컸던 것.
“제가 아는 한 그 이전에는 한글로 작성된 출판물은 물론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에도 스텐 프라이팬 사용법은 한 줄도 없었어요.”
1년여를 줄기차게 이어지는 질문에 답을 해주면서 ‘스뎅녀’로 불리게 된 전씨는 자료를 한곳에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2005년 11월 카페를 열었다. 살림께나 한다는 주부들의 사랑을 흠뻑 받고 있는 ‘스사모’다. ‘스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네이버 대표카페로 회원이 10만여 명이나 된다.
“많은 분들이 ‘스텐 팬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알고 계시지만 아닙니다. 호호”
스텐 팬의 사용법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회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공부를 계속했다. ‘304와 18-10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포스코에 문의를 했다. 크롬과 니켈의 비율을 뜻하는 것으로, 결국 같은 내용이라는 답을 얻었다. 올바른 정보를 알기 위해 대기업에 다짜고짜 전화하는 뜨끈뜨끈한 열기는 그를 스텐 전문가로 만들었다.
주부들에게 스텐 팬 사용법을 알려 주는 소박한 카페지기였던 그는 급식용대형밥솥교체캠페인, 스텐강종표기 통일 서명운동 등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 가고 있다. 또, 그동안 파악한 스텐 주방도구의 특성을 반영해 쓰기 좋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스텐 팬(Pan)을 사용하면 스텐 팬(Fan)이 됩니다. 아직 안 쓰고 계신다면 한번 써보세요. 스텐은 정직하고 깨끗합니다.”
그는 ‘의료기기 제조 스텐’ ‘무공해 건강 스텐’ 등의 미사여구는 판매가를 부풀리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브랜드나 원산지를 보지 말고 제품 자체를 보라고 강조했다. “스텐 주방용품을 처음 쓴다면 꼭 필요한 품목 한 가지를 구입하되 예산을 먼저 정하고, 그 안에서 2,3개 제품을 본 다음 구입하라”는 것이 ‘스텐 여왕’의 조언이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